정민자 지음 중앙 M& B 발행·10,000원
한옥의 아름다움을 설파한 책들은 많다. 한옥 건축에 관해 목수나 전문가가 쓴 책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한옥에서 살고 있거나 살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한옥 짓는 일을 바라본 책은 없다. '본래의 멋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편리한 생활이 가능한 한옥을 지을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답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화단의 거장 서세옥 화백의 부인으로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본뜬 한옥에서 서른해 넘게 살아온 정민자씨가 쓴 이 책은 바로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책에는 필자가 그 동안 한옥에서 살면서 얻은 지혜와 '아름지기' 사무실로 쓸 한옥을 지으며 경험한 현장 체험이 담겨 있다.
정민자씨는 한옥을 비롯해 사라져가는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2001년 출범한 재단법인 '아름지기'에 고문으로 몸담고 있다. 전통가옥 900여 채가 남아있는 한옥마을 북촌의 난개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이 단체는 2002년 인쇄소로 쓰이던 안국동 3번지의 한옥 한 채를 구입했다. 처음에는 보수만을 계획했으나 부재가 다 썩은 바람에 새로 한옥을 지어 사무실로 꾸몄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한옥에 살면서 몸으로 체험한 지혜가 총동원 됐다.
방 전체를 한지로 싸발라 포근한 온돌방을 재현했고 200여 개의 문과 창을 달아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살렸다. 소박하지만 품격 높은 목가구들을 집안 곳곳에 배치했고 마당 한편에는 물수선이 담긴 확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효율적인 수납공간, 편리한 부엌을 갖춘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21세기형 한옥 건설을 기획부터 총지휘한 저자의 체험담이 이 책에는 생생히 녹아 있다. 목수를 만나는 일, 한옥의 자재 고르기, 설계와 공사, 인테리어는 물론 전기, 난방, 가스, 하수도 시설 설치까지 소소하지만 한옥 짓기에 반드시 필요한 실용 지식을 담았다. '한옥 DIY'를 위한 훌륭한 지침서인 셈이다. 거기에 전통가옥을 바라보는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이 부록처럼 보태져 있다. 덕택에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사람은 물론 바람과 빛도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인 한옥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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