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덕 지음 운디네 발행·1만원
'항우가 혼자서 수백 명을 죽이고 자신도 10여 군데에 상처를 입었으나 물러나지 않고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항우가 칼을 멈추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을 바라보던 항우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너는 여마동이 아니냐?"…"친구! 두려워할 것 없네. 내 목에 천금과 1만 호가 걸려 있다 하니 옛정을 생각해서 그대에게 덕이나 베풀고 죽겠네. 어서 가져가게." 말을 마친 항우가 스스로 목을 찔렀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형국'이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된 상태. 원래는 '사기'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나오는 말이지만 이 책에서는 중국 대륙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나라(BC 221∼BC 207) 말의 혼란기 초나라를 일으킨 맹장 항우가 숙적인 한나라 유방에게 굴복해서 자결하는 과정을 통해 글의 의미를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은 고사성어 등 한자를 재미있는 역사의 일화와 함께 읽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했다. 고교 교사인 저자는 누구나 한번쯤 접해 보았을 중국의 고전 초한지를 기초로 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하는 진시황의 출생에서부터 한나라를 건설하는 유방이 죽는 과정까지 약 50년의 역사를 50개의 고사와 함께 엮어나갔다.
첫 편 '기화가거'(奇貨可居)는 전국시대 거상 여불위가 진나라 왕자인 이인의 재목을 알아보고 전재산을 털어넣어 도운 뒤 진나라의 제후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말은 지금은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알맞은 상황과 조건만 만들어지면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이르는 데 두루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고사성어 하나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전국칠웅' 등 역사적 사실, '한단지몽' '한단지보' 등의 다른 고사성어를 연관해 설명하고 있다. '기화가거'라는 말을 주식시장에서 흔히 쓰이는 '가치주' '저평가주' 등에 빗대어 상식도 넓힌다.
주요 등장 인물은 여불위, 진시황, 이사, 조고, 유방, 항우, 한신, 장량, 소하, 괴통, 경포, 이좌거, 팽월 등이다. 이들과 책에 등장하는 100여 개의 한자성어를 중국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구슬 꿰듯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부록에는 본문에 나왔던 한자성어를 모아 간략한 뜻과 그 사용 예를 들었으며 글자마다 해설과 글자가 사용되는 다른 성어를 제시했다. 저자가 기대한 만큼 한문공부가 될 것 같진 않지만 중국 역사 이야기를 고사성어와 함께 익히는 재미와 한문과 친해지는 계기를 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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