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서울 휘경동에서 지은 지 1년밖에 안된 3층짜리 연립주택이 기울어져서 17세대 29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있었다. 조사결과 건물 바로 밑에는 3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10㎝ 두께의 콘크리트로 된 폭 5m의 물탱크가 있어서 상부의 3층 연립주택건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확인됐다.건물은 취약한 지반 위에 지으면 붕괴될 위험성이 높으므로 건물이 놓일 지반의 상태를 파악하는 지질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소규모 건축 시 비용을 아끼려고 지질조사도 하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경향이 있으며 감독기관에서도 이를 묵인하는 실정이다.
지질조사로 많이 사용하는 시추조사는 땅속에 5㎝ 직경의 구멍을 수직으로 뚫고 시료를 채취하여서 땅속의 지질상태를 확인해보는 조사방법인데 소규모 건물을 위한 조사는 2∼4개를 시행해도 수 백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수억∼수십억원 짜리 건물을 지으면서 이런 비용도 안 들이는 관행은 변화가 심한 한국의 지질특성을 고려해볼 때 매우 위험한 일이다.
대규모 건축공사도 사전 설계 시 지질조사를 소홀히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올 여름 부천시 범박동에서 거의 완공단계에 있는 25층 아파트 하부에 폐광이 존재할 가능성에 따른 안정성 문제가 주민들에 의해 제기돼 정밀조사가 수행됐다. 그 결과 지표에서 깊이 40m, 직경 10∼15m의 폐광이 발견되어서 뒤늦게 보강조치를 취한 일도 있다.
외국에서는 각종 건설공사에서 총공사비의 2∼3%를 들여 철저한 지질조사를 수행하지만 국내서는 0.1∼0.2%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건축공사는 건물을 잘 짓는 데만 중점을 둘뿐, 실제 건물이 놓이는 지반에 대한 지질조사는 아주 소홀하다.
국내의 지반은 암석의 종류가 다양하고 매우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반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시추개수로 조사해야 한다. 시추조사를 건물이 앉을 중앙에 한두 개만 수행할 경우 금번 휘경동 연립주택과 같이 건물 모서리 부분에 공간이 있는 취약한 지반을 사전에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충분한 시추깊이로 조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추조사 시 단단한 암석이 어떤 깊이에 있는가를 확인하면, 더 조사해도 계속 암석일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고 조사를 종료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내의 복잡한 지질특성상 암석 밑에는 토층이 발달하는 경우도 빈번하므로 건물 폭의 2∼3배 깊이까지 확인할 수 있게 시추깊이를 결정하여야 한다.
이처럼 복잡한 지반의 지질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재개발 건축공사 시 기존 땅속에 존재하는 지하 매설물이나 폐갱도에 대한 자료가 충분히 없는 상태에서 지질조사도 없이 건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건물규모에 관계없이 충분한 시추조사를 반드시 수행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선진 외국에서는 대도시의 지반특성에 대하여 각 구역별로 취약지역이 자세히 표시된 지반공학지도를 만들어서 건물신축 시 활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국내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추자료를 감독기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정부는 기존 시추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수집, 관리해 우선 대도시부터라도 지반공학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 수 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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