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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릴레이 인터뷰] <3> 강 영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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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자 릴레이 인터뷰] <3> 강 영 숙

입력
200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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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서먹했다.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문득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발견했다. 이게 나였던가, 싶었다. 바깥 풍경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소설가 강영숙(37)씨는 그때의 느낌을 모두어 쓴 단편 '씨티투어버스'를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에 발표했다.공항 폐쇄 조치가 예고된 어느날 밤 한 여자가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1시간 40분이 걸리는 도심 순환 코스의 동반 승객은 아프리카 여자, 외국인 남자,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여자아이다. 광화문, 이태원, 남산타워, 동대문시장을 돌아 광화문에 돌아온다. 불빛이 모두 꺼져버린 대형 건물, 썩은 밧줄에 묶여 내려온 개 한 마리, 미친 듯이 달려가는 들소 떼가 창 밖으로 보인다. '더 먼 곳으로 가실 분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밤엔 달빛도 없습니다'라는 슬픈 안내방송. 버스에 올라타기 전까지 몸을 두었던 도시인데, 유리창 너머로 보니 세상에 없는 이상한 공간 같다.

오랜 불황에 공항폐쇄 예고조치라니 얼마나 위험한 지역인가, 이 나라에 온 건 명백히 신의 저주다, 오 마이 갓! 버스 안의 외국인들은 이렇게 떠들며 노래를 부른다. 매일 맡는 햄버거 냄새에 멀쩡하던 속도 뒤집힌다며 여자아이는 구토한다. 여자는 집을 보러 왔던 영세민 가족도 생각하고, 돈을 빌려 엄마를 수술시킨 뒤 사라진 친구도 생각한다. 그리고 전 남편을 생각한다. 그는 여자를 무섭게 때렸고 여자도 맞서 싸웠다. 전 남편에게서 그간 만난 여자가 죽은 동료 부인으로 뒷정리를 도왔다는 얘길 듣곤 그럼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와 좋아했던 거 아냐, 라고 물었다가 뒤엉켜 싸웠다. 유리창에 여자 얼굴이, 자기 이야기가 비쳤는데 제 것 같지 않았다.

"도시가 매머드처럼 커질수록 사람은 벌레처럼 작아진다. 내가 본 도시인은 지하에서 일하느라 햇빛을 보지 못하고, 고층에서 일하다가 담배를 피우려고 수십층을 내려와야 하는 피로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발을 단단히 붙이고 산다고 느꼈던 곳인데, 시티투어 버스 안에서 보니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강영숙씨는 '씨티투어버스'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도시성에 대한 탐구 의식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그 낯선 공간을 묘사하기 위해 공항 폐쇄와 정전 사태, 세균을 투하하는 비행기, 트럭에 치여 죽어버린 들소 등 환상적인 코드를 동원한 것이 강씨 소설의 도드라진 부분이라고 심사위원들은 짚었다.

강씨는 "환상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엄청난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현실과 밀착하면 할수록 환상이 가깝게 느껴진다"면서 "어떻게 해도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칠 때가 온다. 그때 환상은 치유의 기능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가가 보기에 환상을 배태한 현실은 버스 속 승객의 부유하는 삶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간절히 정주(定住)하고 싶어하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 어디에서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며 살아간다. 그것이 소설 속 버스 승객들의 얼굴이고 도시를 사는 우리의 얼굴인데, 너무나 낯설고 불안하고 서글프다.

최근 장편을 준비하는 강씨는 "소설은 만만한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고 말했다. "몸으로 소설을 체험하기에 어려운 땅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장한 무엇을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숨차고 번잡스럽다. 한국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66년 강원 춘천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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