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한 명을 죽이면 내가 죽어도 좋다. 이라크 사람 열이 미군 하나를 죽이면 언젠가는 물러가지 않겠는가." 이 섬뜩한 말 속에 이라크 대미항전의 원인과 배경이 스며있다. 이라크에서 의료지원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우석균씨는 그들의 반미감정을 이 말 한마디로 전했다.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 현지에서 활동한 지원단 요원들에 따르면, 그들은 "후세인이 물러간 뒤에 더 큰 악이 왔다"고 말한다는 것이다.그 말들 속에 우리의 파병문제를 푸는 열쇠가 숨어있다. 미국에 대한 증오가 그 정도라면, 미군의 역할을 떠맡게 될 동맹국 군대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타르 카셈이라는 팔레스타인의 대학 교수는 최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아랍세계 대중들은 미국의 요구에 응해 군대를 보내는 것을 아랍에 대한 침략행위로 본다. 한 움큼의 달러를 위해 희생을 치르는 바보 짓과 다름 없다"고 썼다.
우리 군대가 주둔할 지역이라는 모술이란 도시는 더욱 위험하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그곳에서 3개월동안 급수지원 봉사활동을 하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철수한 여행가 한비야씨는 모술의 치안문제에 대해 "자원봉사자들까지 짐을 싸는 상황이라면 알 만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라크인 사이에 외국인을 도와주면 죽을 줄 알라는 협박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말은 모든 외국인을 미군의 협력자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방영된 TV 현지르포 프로그램은 무정부 상태란 말이 실감나는 치안부재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미국 말을 잘 듣는 외국 공관들과 유엔 관계자들마저 철수하는 상황을 '점차 치안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현지조사반 보고서로 얼버무리는 것은 우리 젊은이들 등을 떠밀어 사지로 몰아넣는 행위다. 우리도 대사관 직원이 한 때 납치 당하고 협박을 당한 끝에 공관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현명한 결정을 요구하는 오늘 이 시간의 현실이다.
그런 곳에 전투부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필칭 국익이라는 명분을 입에 담는다. 미국의 눈에 나지 않는 것이 좋고, 재건사업에 우리 기업을 보낼 수 있다는 눈 앞의 이익을 의식한 것이리라. 그러나 한국이 이라크 국민 모두의 적으로 변하게 될 사태는 왜 내다보지 못하는가. 사타르 교수도 지적했듯이, 아랍 세계 전체의 반감을 사면 파병에서 얻을 이익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손익 여부를 떠나, 남의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파렴치한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라크 입장에서 보면 점령군으로 돌변한 미국을 돕는 군대는 침략군이나 다를 바 없다. 기울어 가는 주권회복을 위해 떨치고 일어났던 대한제국 시대 의병활동을 생각해 보라. 그들을 압살한 일본군과 미군 역할을 대신할 한국 전투부대가 다를 바가 무언가. 아랍 사람들은 미국에 저항해 주권을 되찾는 투쟁을 성전(지하드)이라 말한다.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슬람 젊은이들이 지하드에 참여하기 위해 떼지어 이라크로 몰려들고 있다. 그런 분쟁에 끼여들기를 자청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보다는 이라크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인도주의 사업에 앞장서는 것이 평화민족의 도리일 것이다. 첨단무기 사격연습 하듯 한 미국의 무차별 공격으로 기간시설이 크게 파괴되어 이라크 국민생활은 극도로 피폐해 있다. 공병대나 의무부대를 더 보내 우물을 파 주고 끊어진 교량과 파괴된 전기시설을 고쳐준다면 그들은 우리를 진정한 이웃으로 맞아줄 것이다. 부족한 의약품을 지원하고 의료진 일손을 도와준다면 더 고마워할지 모른다.
우리는 자라는 세대에게 한민족은 남의 나라를 침략한 일이 없는 평화민족이라고 가르쳐 왔다. 정부와 국회는 조상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
문 창 재 논설위원실장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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