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일터·삶터/서초동 푸르니 어린이집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일터·삶터/서초동 푸르니 어린이집

입력
2003.11.07 00:00
0 0

9월15일 개원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푸르니 서초어린이집은 직장보육시설로선 획기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땅 값이 엄청나게 비싼 서울 강남 도심에 있으면서 100여평의 실외 놀이터를 갖춘 점만으로도 물론 감탄할 일이다. 하지만 이곳이 관심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IBM, 하나은행, 대교 등 3개 기업이 공동으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직장보육시설이기 때문이다. 맞벌이 직장인들이 맘놓고 자녀를 기를 수 있는 근무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서로 무관한 3개사가 손을 맞잡은 것이다.공동직장보육시설 어떻게 시작됐나

3개 업체는 푸르니 서초어린이집을 개원하기 전에는 직장보육시설이 없었다.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직장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나 기업이 독자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 그러던 차에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 형태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에 동조할 기업을 물색, 결국 한국IBM과 대교가 동참하게 됐다.

푸르니 서초어린이집은 철저한 준비 끝에 탄생했다. 하나은행 등은 지난해 연세대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장보육시설의 수요와 요구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했다. '보육시설은 직장보다는 집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 '보육료가 다소 비싸더라도 최고수준의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3개사는 보육시설 수요가 높은 직원 주거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우선 서초, 분당, 일산에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했고, 가장 먼저 서초어린이집이 문을 열게 됐다.

3월에는 어린이집 운영을 전담하기 위해 '푸른보육경영'이란 별도의 운영기관도 만들었다. 기업은 어린이집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운영은 보육전문인력으로 구성된 푸른보육경영이 맡는 방식이다.

운영도 회원사 공동으로

푸르니 서초어린이집에는 생후 6개월∼취학전 아동 약 70명이 다닌다. 부모가 맞벌이 부부인 점을 감안해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아준다. 부모는 모두 한국IBM과 하나은행, 대교의 직원들. 정원은 100명이지만 손이 많이 가 다른 보육시설에서 받기를 꺼리는 1세 미만(올 3월 기준)의 영아가 30명이나 돼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푸른보육경영 조승현 사무국장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세까지는 1대 3, 3세까지는 1대 10으로 해 보육의 질을 높였다"며 "민간보육시설 수준으로 보육료를 받고 있지만 기업이 운영에 필요한 상당 부분을 지원하지 않으면 이같은 수준으로 경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회원사의 출자액은 기업별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동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서초어린이집의 경우 이용자의 절반은 본사가 도곡동에 위치한 한국IBM의 직원들이고 40%가 하나은행, 10%가 대교 직원이기 때문에 한국IBM이 부담하는 액수가 가장 많다. 하지만 내년 봄 개원할 예정인 분당과 일산의 경우에는 아동 비율에 따라 부담 비율도 달라지게 된다.

푸르니 서초어린이집은 최근 비상시 아동들이 건물을 빠져 나오는 탈출미끄럼을 설치했다. IBM본사가 미국 IBM 직장보육시설을 위해 마련한 까다로운 안전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최고의 시설과 보육 환경을 추구하다 보니 회원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않다. 때문에 푸른보육경영은 규모를 확대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다른 기업들에게도 문호를 개방, 전국적으로 30여곳에 어린이집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조 사무국장은 "웬만한 규모의 기업이 아닌 이상 독자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갖출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이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직장보육시설 현황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참여를 모두 확대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나 자녀 보육 문제는 여기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기업이 근로자의 자녀 보육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직장보육시설은 214곳으로 전체 보육시설(2만3,424곳)의 0.9%에 불과하다. 이중 영유아보육법에서 직장내 보육시설 설치를 의무화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95곳이고 나머지 132곳은 여성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이다. 민간기업만을 따져보면 사정이 더욱 열악해진다. 노동부에 따르면 직장보육시설 의무 대상 기업 281곳 중 보육시설을 둔 곳은 16.7%(47곳)에 불과하고, 의무대상이 아닌 기업이 71곳이다.

이처럼 의무적으로 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기업들이 이를 이행하지 않는 이유는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법개정을 통해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직장내 보육시설 의무 설치 대상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법제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의무화 미이행에 따른 처벌조항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들이 보육시설 설치·운영에 필요한 투자 비용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보육시설을 둔 민간기업에 대해 보육교사 인건비를 1인당 최대 월 65만원까지 지원하고, 시설을 마련 또는 보강할 때 융자 지원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이 보육시설 신설에만 집중되고 운영 및 관리에 대한 지원은 부족해 기업들이 보육시설 설치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문향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