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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占-진실 혹 거짓

입력
2003.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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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위 공직자가 된 한 유명인사는 교수 시절, 점에 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곤 했다. 대학생 때 찾은 점집에서 평생 결혼도 못한 채 지지리도 못 먹고 못 산다 해서 좌절했던 기억부터 교수가 된 후 다시 사주를 봤을 때 장관까지 할 대단한 운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경험담을 통해 점의 부질없음을 얘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수능시험 후 시작되는 본격적인 입시 시즌과 몇 달 후 있을 총선, 극심한 취업난, 늘어나는 가정불화 등 생각만 해도 속이 꽉 막혀오는 크고 작은 세상사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점집 문을 두드리게 한다. 종종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같고, 때로는 안 들었으면 좋을 뻔했다는 후회를 갖게 하는 각종 점, 과연 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볼까?

저렴한 정신상담

S사에 근무하는 이지연(26) 대리는 대학 때부터 8년 동안 일년에 서너 차례 점을 보러 다니는 점 마니아다. "뭔가 답답하고 일이 안 풀릴 때 점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잖아요. 20대 초반에는 애정, 대학 졸업 즈음해서는 취업, 직장 다니면서는 결혼이나 재운… 이런 식으로 나이가 들면서 걱정거리도 바뀌니까 지속적으로 찾게 됩니다. 제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이 시원해져요."

많은 이들은 미래가 궁금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상황이 '속터지기' 때문에 역술인을 찾는다고 말한다. 친구에게도 말 못할 고민까지 털어 놓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앞으로는 잘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점술왕국' 송병창 원장은 "우리나라의 정신과나 심리 상담소 요금은 역술인 상담료보다 훨씬 비싸다"며 "일반인들이 큰 부담없이 종합 인생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점집 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올해, 내년은 흐름 바뀌는 불안한 시기

2004년은 갑신(甲申)년이다. 10단위를 칭하는 '십간' 중 첫 자인 '갑'자는 해를 세는 데도 사용돼 10년 주기의 첫 해를 나타낸다. 역술인들은 2004년이 새 틀을 짜는 해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신(申)'은 재주 넘기 좋아하고 부산스러운 원숭이를 상징, 각종 변화와 불안정이 예상된다.

녹현 철학원 이세진 원장은 "120년전 갑신년에 '갑신정변'이 있었던 것처럼 내년의 키워드는 '새판 짜기'가 될 것"이라며 "국가나 개인 모두 새로운 것을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또한 "올해 유난히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은 큰 기운의 흐름이 끝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연말연초에 점집이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정리와 시작의 시기에 미래를 점쳐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역술인들은 과연 자신의 운세도 미리 점칠까? 대부분은 그렇다고 답한다. 사주를 뽑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다. 물론 점을 뽑아 보고 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대학로 '점술왕국' 조규문 원장은 "아무리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도 따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점을 본 후 무기력한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점의 또 다른 장점은 스스로의 장단점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회사원 A씨(26)는 점집에 갈 때마다 "말 조심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A씨는 "사실 주위에서도 종종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역술인에게 들으면 효과가 열 배는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술인이 "말 막 해라" "성질좀 팍팍 내라" "부모한테 버릇 없이 굴어라"처럼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조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까?

가장 위험한 것은 맹신

회사원 P씨(25)는 지난 6월 3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다툰 후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압구정동의 한 사주카페를 찾았다. 역술인은 그녀에게 "남자친구와 3개월 후에 확실히 헤어질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사실 그 전에도 사소한 문제로 티격태격한 적이 많았거든요. 괜히 헤어진다는 말을 듣고 나니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아, 정말 헤어지려나 보다'라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가게 되더라구요. 그러더니 정말 3개월 만에 헤어졌어요. 돌이켜보니 점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도 잘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술인들은 점을 맹신하는 것을 가장 큰 부작용으로 꼽는다. 강남구 삼성동 '예당원' 예당 원장은 "사주는 운명이지 숙명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운명'에 '운전할 운(運)'과 '목숨 명(命)'을 쓰는 것은 삶은 운행하기 나름이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불안심리 이용하는 역술인

사실 '남편에게 큰 사고가 닥친다' '대학 떨어진다' '집안이 망한다' 등의 무지막지한 경고에 초연할 수 있는 강심장은 드물다. 적지않은 역술인들은 사람들의 이 같은 불안심리를 역이용해 돈을 쓸어 모은다는 비난을 받는다.

역술인 A씨는 "실제로 역술인 사이에 '말 받아서 10배 부풀리라'는 어구가 유행한적이 있었다"며 "상담하러 오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를 먼저 '불기' 마련이라 그것을 잘 이용해 굿이나 부적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해석에 따라 180도 달라지는 인생

시대에 따라 점도 유행을 탄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계룡산에서 산신령과 도를 닦았다'고 주장하는 역술인이 인기였다면 요즘은 일류 대학, 대학원 등을 나온 학벌 좋은 역술인의 주가가 높아지는 시대다. 또한 점집을 찾는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면서 무서운 협박성 점괘로 상담하러 오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들의 인기는 떨어지고 친구처럼 고민을 충실히 들어주는 역술인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주 해석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술집에 나가거나 여러 번 결혼한다는 식으로 간주됐던 도화살은 '이성에게 인기 많다'는 식으로 좋게 해석된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는 역마살도 근래에는 '외국 생활 많이 하겠다'고 받아들여져 듣는 이들이 오히려 좋아하는 추세.

역술인들은 사주나 점괘는 해석하기 나름이므로 이를 듣고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데 입을 모은다. 결국 '사주는 수상(手相·손금)만 못하고 수상은 관상(觀相)만 못하며 관상은 심상(心相)만 못하다'는 옛말대로 점은 듣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인 모양이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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