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치자금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정치자금 투명화, 지정기탁제 부활, 처벌 강화, 저비용 정당구조 등이 골자다. 정치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재계의 고충과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된 우려가 담긴 이번 제안은 대체적으로 4당이 합의한 정치개혁 방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질적 정경유착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는 재계의 단호한 결단도 엿보인다.그러나 전경련의 제안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결코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경제단체를 통한 정치자금 배분이나 지정기탁금제 부활은 재계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 의도가 간파된다. 현명관 전경련부회장은 지정기탁금제가 부활되면 정치자금이 친기업적 정당에 몰리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걸 바란다"고 시인했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기업이익을 위해, 소극적으로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정치자금을 냈다가 오늘의 파국에 직면한 재계가 여전히 영향력 행사를 바란다면 결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정치자금 관련 위법행위에 대해 전경련은 정치권의 고해성사 및 조사단계를 거쳐 국민동의에 의해 사면하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기업 회계처리도 일괄 사면하되 사면대상이 되는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전경련이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 정치개혁이라는 중차대한 수술을 앞두고 공범관계에 있는 재계만은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무리하고 이기적이다.
정치개혁은 정치권의 뼈를 깎는 각성과 함께 재계의 용기와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재계가 부당한 정치자금 압력을 받았을 때 'NO'라고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없으면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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