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법정치자금 수사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위험수위를 넘어서자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정치개혁에 나서고 있다. 정치개혁의 바람은 정치자금의 투명화, 정당구조의 개혁, 선거공영제에서 나아가 선거구제 개혁을 논의하는 단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선거구제에 관한 한 소선거구제를 고수하던 한나라당이 3당총무회담에서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자세의 변화를 보임으로써 총선 전에 정치자금, 정당, 선거구제를 포괄하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중대선거구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분열적 지역구도를 완화하기 위해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함께 제의한 선거구제 중의 하나이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자세 변화는 분열적 지역구도를 완화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혁에 합의해 줄 경우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에 내각구성권을 넘겨주겠다는 노 대통령의 정치적 빅딜 제의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있다.
선거구당 2인에서 5인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정당후보자들이 당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특정 정당의 지역 독식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중대선거구제는 지구당의 폐지를 통해 돈 적게 드는 선거를 위한 개혁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먼저, 선거비용이 덜 들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있다. 일본에서는 중대선거구제가 금권정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기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중대선거구제는 기성 정치인에게 유리해 신진 정치인의 정치권 진입을 어렵게 함으로써 정치권의 세대교체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셋째, 한 선거구내 1위와 2, 3위 당선자들의 득표율 편차가 심할 경우 하위로 당선된 후보들의 대표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넷째,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고착시킴으로써 대통령제의 안정적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시대에 시행되었던 1구 2인 중선거구제가 여당의 절대다수 의석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활용되었던 선례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과 시민단체가 중선거구제를 전반적으로 불신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 채택에 있어 국민적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중대선거구제라는 특정 선거구제의 채택을 전제로 협상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정치자금, 정당, 선거에 관한 전반적인 정치개혁의 목표에 부응할 수 있는 선거구제를 국민적 동의 하에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개혁의 전반적인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분열적 지역구도의 완화, 정치자금의 투명화와 저비용정치의 실현, 신진 정치인에 대한 정치시장의 개방, 국민참여와 대표성의 증진, 정책정당화로 수렴되고 있다. 선거구제 개혁은 이러한 목표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필자는 1인2표 정당명부식 권역별 일률배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 제도는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을 각 정당의 전국득표율에 따라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방식으로 특정 정당이 지역내 의석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며 정당투표의 도입으로 책임있는 정책정당화를 유도할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석이 확대될 경우 여성, 직능, 신진 정치인의 균형적 정치권 진입 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제도가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의석에 버금가는 숫자로 늘려야 한다. 많은 국민과 시민단체들이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위한 의원 정수의 확대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실현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임 혁 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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