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 것 없는 기세로 진행되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보면서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검찰이 칼을 들이대보니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위법을 하지 않은 정당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부패한 정치인의 도덕성을 손가락질하기보다는 불법에 발을 담그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는 정치판을 뒤집어 깨끗한 정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게 먼저 일 것이다.부패한 정치판은 정치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만, 온 국민이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범죄양산 제도가 있다. 바로 부동산 관련 세금이다.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세금을 가능한 한 적게 내기 위해 거래가를 낮춰서 허위신고하는 일이 관행처럼 널리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부동산을 매입할 때 내는 취득·등록세는 매매자의 거래 신고가격이나 또는 정부가 정한 시가표준 가운데 높은 금액을 택해 세금을 내게 되어 있다.
시가표준은 대개 실거래가의 20∼30% 수준에 불과하므로, 실제 거래시에는 양자 합의 하에 이 시가표준을 약간 넘는 수준에서 거래한 것으로 가짜 매매계약서를 만들어 지자체에 신고하는 것이다. 제도 자체가 불법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셈이다.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소득세도 방식은 다소 다르지만 실거래가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야 절세를 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10·29 주택시장안정대책은 치솟는 집값을 잡기위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세제 관련이 대부분이다. 보유세 과표가 대폭 인상돼 세금부담이 무거워지고, 주택거래신고제가 도입돼 실거래가 신고가 사실상 의무화하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가 크게 높아진다. 집값도 집값이지만 불법을 강요하고 불평등한 조세제도에도 큰 변화가 기대된다.
그러나 10·29대책이 정말 이런 개혁을 가능케 할지는 의문이다. 이번 대책은 시작부터 뒤뚱거리고 있다. 부동산 거래질서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주택거래신고제가 주무 부처도 모르게 갑자기 추가되고, 취득·등록세 실거래가 과세여부에 대한 해석이 부처마다 달리 나오는 등 졸속성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세금을 올리는 일은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거센 조세저항에 좌초하기 십상이거늘 이렇게 허점투성이의 대책이 과연 예정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미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혁명도 아닌데 갑자기 세금을 20배씩이나 올릴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너무 의욕만 지나쳐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방안들을 일시에 쏟아낸다면 정책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집값 안정도 중요하지만 조세 정의는 더욱 중요하다. 부동산의 부침은 일시적이지만 올바른 조세체계는 영원히 국가경제의 뿌리가 된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무거운 세금 부과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조세제도를 바로 세우는 데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강남의 10억원짜리 아파트 소유자가 내는 세금이 1억원짜리 강북 단독주택보다 적은 불평등은 집값 폭등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또 반대로 이번 대책이 유독 강남에만 각종 세부담을 집중하는 것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강남이든 강북이든, 서울이든 지방이든, 소득이 있는 곳에 그에 상응하는 세부담이 가는 공평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집값 불안과 투기 문제 해결의 전제조건이다.
배 정 근 경제부장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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