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사진) 회장 체제'로 재 출범한 현대그룹이 경영권의 향배가 걸린 시련에 봉착했다.국내 개인투자자가 지난달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의 사모펀드를 통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12.82%(71만9,330주)를 매집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매집 주체가 일단 현 회장의 '우호세력'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5일 재계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매집 주체는 단순투자를 위한 제3세력이라기 보다는 그간 현 회장측과 갈등을 보였던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 등 '범(凡) 현대가'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그룹 경영권을 놓고 현·정씨간 집안 싸움이 촉발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현대그룹 "우리쪽은 아니다."
지분 매입은 지난 달 7일부터 8차례에 걸쳐 주당 평균 2만9,404원씩 모두 211억여원이 동원됐다. 현재 이 펀드의 성격은 '현대'와 무관한 제 3세력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경영권을 바꿔놓을 수 있는 대량의 지분을 일시에 매입했을까.
이와 관련 현대그룹측은 그룹이나 현 회장 개인 또는 우호세력과는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룹 계열사나 현 회장, 현 회장의 모친인 김문희 여사(용문학원 이사장)측은 결코 아니다"며 "지배구조를 다지기 위해 지분을 매집했다면 떳떳하게 했을 것이며 현 단계로선 신한BNP측이 밝힌대로 '투자목적'으로 보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범(凡)현대가에 무게 중심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매집 주체가 정 명예회장을 비롯한 범 현대가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한때 현대그룹에 대한 '섭정'의사를 밝힌 바 있을 뿐 아니라 현대가에는 아직도 '현대그룹을 정씨가 아닌 다른 집안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KCC 고위 관계자는 "KCC 법인이나 정 명예회장 단독으로 주식을 매집한 것은 없다"며 "얼마전 엘리베이터 지분을 매집했던 범 현대가가 연합해 지분을 매집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현 회장이 정씨 형제들의 합의아래 취임했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며 양 집안의 불협화음이 여전함을 귀띔했다.
사모펀드의 조성시기와 주식 매집 시기도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모펀드는 9월3일 범 현대가에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이는 시점과 맞물려있다. 또 매집 시기도 현 회장 취임 직전까지로 집중돼있다. 신한BNP측은 지난달 7∼14일 5차례에 걸쳐 이번 매집의 80%인 56만3,330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만일 이번 12.82% 지분의 주인이 정씨 형제들로 확인될 경우 범현대가는 기존 지분(16.20%)을 합쳐 29.02%를 확보, 현 회장(18.57%)과 우호지분(8.77%)을 합친 27.34%를 제치고 1대주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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