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저녁 SBS 드라마 스페셜 '때려'의 야외 촬영이 이뤄진 경기 일산 마두역 광장은 배우 주진모(29)를 보기 위해 몰려든 소녀팬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드라마 '때려'에서 나이트 클럽 '삐끼'(호객꾼)이자 권투 선수인 '한새'역을 맡아 무겁고 어두워 보이던 그 간의 이미지를 한방에 때려버리는데 성공한 주진모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삐끼요? 어휴, 연기야 하지만 실제로 하라고 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거에요. 워낙 숫기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한테는 인사도 못하거든요." 주진모는 '삐끼'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수가 적은 성격 때문에 그는 데뷔 때부터 '무게 잡는다'는 소리깨나 들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그의 별명이 '주민수'였을까. 게다가 지금까지 주로 무겁고 진지한 역할을 소화했다. 영화 '무사'에서는 독선적인 장군 '최정' 역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실제상황'에서는 대낮에 살인을 저지르는 화가 역을 각각 맡았다.
그런 주진모가 여자를 꼬시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날라리 '한새' 역을 맡은 건 대단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멋있어 보이려' 권투를 시작한 한새는 신인왕 결승전에서 맞붙은 장유철이 경기 후유증으로 죽자 죄책감에 동생 유빈(신민아)를 돌보다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발랄하고 익살스러운 한새의 성격을 표현하는 게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진모는 "첨엔 평소 성격이랑 너무 달라서 힘들었는데 이젠 한새를 이해할 것 같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주진모는 지난 2년간 출연하려던 영화 ('발해', '방아쇠')의 제작이 중단되고 소속사와 갈등을 겪는 등 배우로서 불운을 겪었다. "하늘이 이제는 더 이상 연기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 속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그는 그 시절을 "낚시가 없었으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불운의 나날을 보내면서 그는 '아픔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전에 했던 역할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특히 '무사'에서 최정 장군 역은 주위 평가가 안 좋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럴 만했다 싶죠.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진모는 98년 유인촌이 운영하는 극단 '유인촌 레퍼토리'에 무작정 찾아간 것을 계기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극단 시절 연극 '택시 드리벌'에 출연한 최민식의 연기를 보며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더 이상 몸 좋고 얼굴 잘생긴 미남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로 인정 받고 싶은 듯 보였다.
"제가 맡은 배역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가 다가서기 힘들고 날카로워 보이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냥 같이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옆집 오빠 같이 편안하게 보이고 싶네요." 그간 자신의 연기가 어깨에 힘주고 폼잡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사람 냄새 나는 연기를 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전날 새벽 4시까지 촬영하느라 잠 한숨 못 잤다는 주진모는 인터뷰가 끝나자 주위에 몰려 있던 어린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줬다. 그렇게 그는 옆집 오빠처럼 친근한 '연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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