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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자살… 삶의 처연한 몸짓/사다리움직임 연구소 "보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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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자살… 삶의 처연한 몸짓/사다리움직임 연구소 "보이첵"

입력
200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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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게다가 약해 빠지기까지 한 육군 일등병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은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다. 그의 암울한 생에 드리운 유일한 빛이자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와 아기. 아내와 아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 보이첵은 매일 완두콩만 먹어야 하는 임상실험 대상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 마리는 세속의 힘과 아름다움을 가진 악대장에게 눈길을 돌린다. 아내의 부정을 눈치챈 보이첵은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부조리, 소외 같은 현대 연극의 주제를 누구보다 먼저 제기한 것으로 평가 받는 독일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보이첵'(Woyzeck)은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복수극에 불과하다. 처용설화에 스며있는 용서와 상생의 미학은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다. 게다가 작품도 미완성이다. 뷔히너가 23세의 젊은 나이에 패혈증으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서인지 '보이첵'은 현대 연극의 고전이 됐다.

1월 러시아 연출가 부드소프가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보이첵'을 선보인 지 9개월 만에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소장 임도완)가 다시 지난달 28일부터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 2000년 초연된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의 '보이첵'은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림을 감상하듯 직관으로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낫다. 마임과 이미지를 결합한 이른바 미마쥬(Mimage)를 통해 색다른 작품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보이첵을 비롯한 11명의 배우는 권력을 상징하는 나무 의자를 든 채 공연 내내 마임과 춤 그리고 대사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무대 장치는 필요하지 않다. 배우들이 몸과 의자를 이용해 만들어내는 장면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하나의 정물화나 풍경화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강렬하고 비극적 탱고 음악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수 십 개의 장면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악대장의 유혹을 받고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마리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장면이나 보이첵이 마리를 죽이기 전에 갈등하는 장면, 보이첵에게 칼을 파는 유대인에 대한 묘사 등은 이 연극의 압권이다. 사다리움직임 연구소만의 독창적 보이첵 해석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연출을 맡은 임도완 서울예대 연극과 교수는 "원작과 의자만을 배우들에게 던져놓고 장면 하나 하나를 만들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면서 "사다리움직임 연구소의 '보이첵'은 공동 창작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사다리움직임 연구소 배우들이 자신의 신체와 의자라는 일상적 오브제를 어떻게 연극 언어로 만들어내는지 지켜보는 건 큰 즐거움이다. 공연은 23일까지 계속된다. (02)741―3934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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