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동해에서 태백쪽으로 38번 국도를 따라 20㎞쯤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준경묘(濬慶墓) 입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 약 2㎞ 가다가 고개를 넘어가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李楊茂) 장군의 묘인 준경묘가 있다. 묘 주변에는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쭉 뻗은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일대의 송림은 옛날에 '황장목(黃腸木)'이라 해서 궁궐을 지을 때 대들보로 쓰거나 왕실의 관재(棺材)로 사용됐다.소나무는 우리민족이 걸어온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우리 삶 속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민족의 생활문화는 소나무에 의해서 양육됐다고 할 정도로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를 이용하며 살다가 마지막으로 소나무 칠성판에 누워 솔숲에 영원히 묻히는 소나무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무의 귀공자 소나무는 사군자와 또 다른 격으로 취급됐다.
소나무는 얽힌 전설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특히 경북 예천의 석송령이나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은 인격(人格)을 부여받아 우리민족의 소나무 사랑에 대한 각별한 정신을 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현대 격변기를 겪으면서 우수한 형질의 소나무들이 점차 사라져 참으로 안타깝다.
모든 종류의 숲은 언제나 우리 몸과 마음을 푸근하게 안아주고 다독거려 줄 수 있지만, 소나무 숲에서는 특별히 독특한 솔 향기가 나와서 사람의 기분을 밝게 해주어 마음이 더욱 편해지게 된다.
준경묘 주변의 소나무들은 거대하면서도 곧게 자란 것이 특징인데 기이하게도 입구 쪽에 있는 소나무들만은 서로 뒤엉켜 싸우는 것같이 꾸불꾸불하다.
이곳에 묻힌 양무 장군의 후손 태조가 창업한 조선조 500년 역사 중에 맏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은 경우가 고작 7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방계에서 왕이 나올 정도로 왕위 계승을 위해 서로 뒤엉켜 다투었기 때문에 소나무가 그런 모양을 했다는 속설이 있다. 또 준경묘에서 바라보는 앞산이 다섯 봉우리라서 조선왕조가 500년밖에 유지될 수 없었다는 얘기도 함께 전해 온다.
이곳 준경묘 일대의 좋은 소나무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이 감히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왕실 소유 임야였고, 근래 와서는 전주 이씨의 가장 오래된 시조묘라서 문중의 특별한 관리로 남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외진 곳이라 사람의 발길이 적어 원시림을 생각나게 할 정도의 아주 좋은 솔숲인데 이곳이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문중뿐만 아니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정 헌 관 임업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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