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머니의 옷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어머니의 옷

입력
2003.11.05 00:00
0 0

며칠 전 볕 좋은 날 오후,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오늘 날씨가 아침부터 참 좋더라. 들일도 다 끝나고 해서, 오늘은 내가 마음먹고 이 다음에 아버지하고 내가 입고 가라고 느들이 해준 옷을 꺼내 마당 한구석에 자리를 펼쳐놓고 거풍(擧風)을 시키고 있다. 볕은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지. 그동안 장롱에서 축 가라앉아 있던 것이 이렇게 펼쳐놓으니 올올이 일어서는 게, 손으로 쓰다듬어도 까끌까끌한 게 여간 좋지 않아. 모든 게 이렇게 잘 준비가 되었구나, 싶으니 마음도 여간 흐뭇하지 않고. 그래서 누구한테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데, 자랑하고 싶은 데가 없어서 내가 지금 니한테 이다음에 내가 입고 갈 옷 쓰다듬으며 전화를 한다."

어린 시절 마당가에 수의를 펼쳐놓고 쓰다듬던 할머니의 모습이 그랬고, 지금 어머니의 모습이 그렇다. 나는 갑자기 슬퍼지고 서러워지는데, 어머니는 베가 좋다고, 옷이 좋다고 자랑처럼 내게 그런 전화를 하신다.

전화를 받고 나서 나는 건넌방에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 다음 나도 어머니처럼 저렇게 자연스럽게 아들에게 그런 전화를 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이 가을은 또 얼마나 지나가야 할까.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