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경기 회복 지표에 고무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경제 챙기기에 나서는 등 대선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날로 악화하고 있는 이라크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부시 대통령은 3일 앨러버머주 버밍햄의 한 크레인 공장을 찾아 경제 낙관론을 폈다. 대형 크레인을 배경으로 한 그의 연설은 5월1일 항모 에이브러햄 링컨호 함상에서 '임무는 완성됐다'는 플래카드를 뒤에 두고 이라크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할 때 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부시 대통령은 350명의 소기업 경영자와 근로자들에게 "우리는 경기회복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했고 그래서 진전을 이뤘다"며 자신의 세금감면 정책이 경기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3·4 분기 국내총생산(GDP) 7.2% 증가 등 수치를 열거하며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임을 부각하는 데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전날 이라크에서 36명의 사상자를 낸 치누크 헬기 격추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늘 해오던 대로 미국의 대 테러전을 계속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수사들이 나열됐다. "이라크의 적은 미국이 도망칠 것으로 믿지만 우리는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는 선언이 이라크 상황에 대한 그의 언급의 전부였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의 암울한 소식으로부터 미국인들의 관심을 국내 문제로 돌려놓겠다는 듯 그는 경제 문제에 연설의 초점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희망과는 달리 이라크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점점 가혹해지고 있다. 2일 발표된 워싱턴 포스트·ABC 방송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미 국민의 51%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정책에 찬성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라크 정책에 대한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번 치누크 피격은 미 국민들에게 '베트남 전쟁'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인들의 충격을 전하면서 "베트남의 망령이 이라크에 깃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참모였던 피터 피버 듀크대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이번 사건의 충격은 비극적인 사상자 수에 그치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은 과연 미국이 승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군의 필요성도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은 "더 이상 우리 병사들이 목숨을 잃기 전에 이 끔찍한 임무를 끝내야 한다"며 국내의 철군론을 대변했다.
2004년 대선의 예비선거일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부시 정부의 이라크 정책 변화를 점치는 관측들도 쏟아지고 있다. 보스턴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퇴역 대령 앤드루 베이세비치 교수는 "부시 정부는 겉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출구를 찾고 있다"며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인명 손실의 증가로 백악관은 이라크 상황의 출구를 찾는 데 더 시급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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