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직 한참 일할 40대인데도 치아가 부실하다. 의치가 벌써 5개나 된다. 남편이 이렇게 치아가 부실해진 것은 다름아닌 술 때문이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술독에 빠지니 치아가 건강할 턱이 없다. 남편은 폭음을 하는 날에는 양치질을 않고 그냥 잠을 자는 습관이 있다.어느 날 남편이 입에 솜뭉치를 가득 물고 귀가했다. 이가 아파서 치과병원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불 속에서 끙끙대던 남편이 말했다. "의사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술을 끊으라는 군. 의사 선생님 말대로 당장 술을 끊어야겠어." 웅웅대는 목소리였지만 표정은 단호했다. 남편은 "눈물을 쏙 빼면서 치아 치료를 받다 보니 내가 정말 늙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서글퍼지기도 하고 말이야"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다짐이 작심삼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남편이 치통만 사라지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다시 '병나발'을 불어대는 것을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남편의 다짐을 들으니 오히려 남편이 한심하게 생각됐고 미워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 멋지게 보이던 남편이 이제는 세월이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차라리 다짐이나 하지 말지.
아니나 다를까. 지난 주 금요일 남편은 고주망태가 돼서 집에 들어왔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이리 저리 움직여 옷을 벗겨주려니 슬그머니 화가 났다. 그때 남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왜 술을 끊지 못하는 줄 알아. 당신과 자식들 때문이지. 직장 일이란 게 쉬운 게 아니야. 이래저래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면 어쩌겠어."
갑자기 짜증이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술만 빼면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 20여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남편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회사에서 오죽 스트레스가 많았으면 술을 이렇게 마신걸까. 세상에는 몸에 나쁘지만 국민들에게 허용되는 것들이 있다. 술과 담배가 그것이다. 술과 담배가 해로운 줄 알면서도 허용되는 것은 나름대로 긍정적 기능이 있기 때문이리라. 여보, 스트레스가 쌓여도 술을 많이 들지 마세요. 내가 당신의 또 다른 스트레스는 아니었나요. 나는 남편의 건강을 비는 착한 아내가 돼 있는 것이다.
/황복희·대전 동구 성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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