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얼굴은 반상(盤上)의 고수를 앞에 둔 하수의 표정이다. 곤혹스럽고 쩔쩔맨다. "부패 원조당"이라는 국민의 지탄은 따가운데 '대선자금 전면수사'라는 검찰의 칼날이 들이닥칠 태세다. 사석에서 털어놓는 말들도 하나같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한나라당은 4일 검찰수사와 관련해 3개의 논평을 내놓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검찰에 압박을 가하고 수사지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였다. '청와대 기획설 입증'이라는 제목의 두번째 논평은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선자금 수사에 돌입하는 등 모두 각본대로가 아니냐." 이어 3번째 논평은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를 확대하는 저의는 특검을 방해하려는 기도"라고 주장했다.
세 개의 논평을 받아본 기자들은 한참 헷갈려야 했다. 첫번째 논평은 '청와대가 현재 검찰에 수사압력을 넣고 있다'고 주장하더니, 두번째 논평에서는 돌연 '현 국면은 청와대와 검찰의 치밀한 사전기획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세번째 논평에선 또다른 해석이 나온다. '수사확대는 한나라당의 특검 추진을 방해하려는 검찰의 의도'라는 것이다. 이날의 논평들은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 이후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한나라당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최병렬 대표까지 나서 "검찰수사를 신뢰한다" "안대희 중수부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실세"라고 했던 게 불과 1개월 전의 일이다. 149석을 가진 정당이라기엔 상황 파악과 대처 능력이 너무나 한심하다. '특검 밀어붙이기'도 이처럼 경황없는 와중에 나온 것이라면 하수의 악수가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이동훈 정치부 기자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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