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회와 시위는 전혀 다른 두 측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첫째, 더 이상 집회시위가 민주주의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고 짜증을 일으키는 사회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집시법 개정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할 정도이다. 둘째, 외교기관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규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우리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과 집회시위문화에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집회시위는 한국 현대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정상적인, 즉 헌법이 예정하는 민주주의적 방법과 절차에 의하여 국가의사가 결정될 수 없었던 정치환경 아래에서 집회시위는 국민들이 권위주의 정권에 항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과거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는 위축하는 내용을 가졌고, 또 실제 그렇게 해석·적용되었다.
이러한 파행적인 법률은 당연히 일반 국민들에게 집회시위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규범적 틀이 되지 못했다. 이에 집회시위가 불법으로 개최·진행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는 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받는 불법이었다.
최근 집회시위가 국민 일반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러한 인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집회시위는 이중적 기능을 갖는다.
먼저, 민주주의에서 공직자는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지만 4년 혹은 5년 후의 선거에서 비로소 국민의 재신임을 받는다. 주권의 공백기간이 그만큼 길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수단이 집회시위이다. 집회시위를 통하여 국민들은 수시로 국가의사결정과정에 여론을 투입하여 공직의 경직성과 편향성을 통제·감시하고 시정을 유도한다.
또한 집회시위는 국민이 자신의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국가에게, 그리고 가해자에게 호소하여 교정받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다만 이러한 신문고의 기능은 오늘날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사후적인 소송을 통하여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는 수단들이 충실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집회시위를 짜증나는 사회현상으로 인식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이다. 우선, 집회시위가 주로 사적 이익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집회시위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국민에게 아무런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러한 집회시위는 공익을 도모하는 목적의 집회에 비해서 국민의 인내를 요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집회시위가 법적 테두리를 무시하고 이루어지고 있다. 집회시위를 개최·진행하는 이들이 집시법을 준수할 법적 의무를 진지하게 느끼지 못한다. 법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회시위가 예측불허의 내용과 방법을 동원하면서 집행당국에게는 규제의 어려움을, 그리고 일반 국민에게는 일상생활의 평온을 해치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집회시위가 이익투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이러한 폐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집단 간 이익의 충돌을 사전에 조정하는 제도적 수단이 먼저 정비되어야 한다. 또 정당이 개별적인 국민의 이익과 관심을 수용해서 정책화하고, 이를 국가의사결정과정에서 제도화하여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할 때 국민은 직접적인 표현수단인 집회시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위헌결정은 국회의사당 등 집회금지장소를 넓게 규정하는 집시법의 규정들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추상적으로 위험이 예견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집회시위로 인하여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할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집회시위가 금지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치들이 취해진 후 집회시위로 인하여 겪는 국민불편은 민주주의의 비용으로 감수하여야 한다.
전 광 석 연세대 법과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