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진객(珍客)' 철새가 돌아왔다. 시베리아와 중국대륙을 누비던 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 땅에 어김없이 찾아왔다. 경남 창원시 동읍 주남저수지 일대가 그들의 보금자리다.예년이면 11월 초가 돼야 그들을 볼 수 있었으나 올해는 보름 가량 빨라 이미 5,000마리 이상 둥지를 틀었다.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는지 알 수 없지만 본격적인 철새도래 시즌인 이달말 쯤엔 그 숫자가 수십만마리를 헤아릴 것으로 보인다. 봄에서 가을까지가 인간들의 세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들의 세상이다. 그들의 생활을 방해해선 안되겠지만 잠시 들여야 보는 것 쯤이야 어떠랴. 철새 탐조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남저수지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자연습지다. 주남저수지를 비롯, 남쪽의 동판저수지, 북쪽의 삼남저수지를 통틀어 일컫는다. 전체 규모만 180만평.
주남 탐조여행은 동판저수지에서 비롯된다. 태고적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습지다. 암흑천지를 깨우며 서서히 동이 튼다.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 때쯤 '푸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철새들이 비상한다. 큰부리큰기러기, 청둥오리, 고방오리 등 다양한 개체가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집단군무다. 태양을 배경으로 하는 한 폭의 그림이 만들어 진다.
날이 밝으면서 저수지의 윤곽이 드러난다. 주남저수지로 이동한다. 언제 이렇게 많은 철새들이 이 곳에 왔을까. 절로 탄성이 나온다.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들여다 본다. 갈대밭 옆으로 청둥오리 2마리가 자멱질한다. 먹이감을 찾기 위해 물속으로 얼굴들 들이미니 자연히 다리가 위로 올라간다. 오리들이 연출하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다. 그 자리에서 몸통을 90도 회전을 하는 가 하면 다리를 비비꼬기도 한다. 수초가 물속 깊이 있으면 그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고.
모처럼 반가운 손님도 많이 보인다. 노랑부리저어새다. 해마다 5마리 남짓이 이 곳을 찾았지만 올들어 벌써 13마리가 눈에 띤다. 민물도요는 80여마리에 달하고, 학도요도 2마리가 보인다.
하늘에는 갑자기 비행편대를 나타난다. 큰부리큰기러기 가족이 V자 편대로 날아간다. 10분 정도 지나니 아까와는 다른 가족들이 역시 편대를 형성, 이 곳에 착륙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주남을 찾은 철새는 이 곳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30∼50㎞ 떨어진 낙동강하구언과 창녕 우포늪을 오가며 생활한다.
갈대숲 사이로 새의 깃털로 보이는 하얀 물체들이 흩어져 있다. 새매, 흰매수리 등 맹금류로부터 작은 새들이 공격을 받아서 생긴 것들이다. 오후 4∼5시쯤에는 맹금류가 점차 늘어나 심심치 않게 이 같은 장면이 목격된다. 수만리길을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고 편안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 그 것이 철새들의 삶인가 보다. 그렇다고 인간이 개입할 수도 개입해서도 안 된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그래서 누구도 깰 수 없는 그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철새들의 생명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맹금류가 아니라 인간이 아닌가.
주남저수지는 한때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였다. 낙동강 하구언의 개발로 환경이 파괴된 덕(?)에 최고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지금은 천수만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환경파괴가 가져온 결과물이다. 철새들은 서식하는데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으면 발길을 돌린다. 냉혹한 자연의 섭리다.
주남저수지의 매력은 적은 노력으로 많은 철새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조성된 4㎞남짓한 둑길을 따라 걸으면서 철새를 감상할 수 있다. 힘들게 찾아 다니지 않아도 된다. 망원경 하나만 있으면 그들을 위협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생활을 지켜볼 수 있다. 저수지 가장자리의 청둥오리, 큰부리큰기러기, 갈대숲의 왜가리 등은 맨 눈으로도 볼 수 있다.
올해는 농업용수를 위해 채워둔 물을 적절히 빼내 철새들의 서식요건도 좋아졌다. 수심이 얕으면 댕기흰죽지오리 등 잠수성 철새가 적고, 반대면 청둥오리, 고방오리 등이 적은 데 올해는 수심이 적당하다고 한다. 다행히 철새보호를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저수지 건너편 보리밭을 철새들의 먹이 공급을 위해 남겨두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일몰 때가 되자 아침 일찍 둥지를 떠났던 무리들의 귀향이 시작된다. 또 한차례의 장관이 이어진다. 한바탕 철새들의 군무가 끝나자 주남은 어둠으로 뒤덮인다.
/창원=한창만기자 cmhan@hk.co.kr 사진=최종수(주남과 함께 하는 사람들 대표)
남해고속도로 동창원IC에서 나와 14번 국도를 타고 창원 방면으로 1.5㎞ 가량 가다 보면 동읍삼거리와 만난다. 우회전한 뒤 30번 지방도를 따라 3㎞ 직진하면 오른편으로 동판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끼고 우회전, 1㎞를 가면 주남저수지 전망대에 도착한다.
열차로 가려면 경전선 창원역(055-292-7788)에서 내린 뒤 21-5, 21-6, 21-8번 시내버스를 타고 가월마을 입구에서 내린 뒤 1㎞ 정도 걸으면 된다.
저수지 인근에는 춘관장여관(055-291-7513), 해훈민박(253-7767) 등 소규모 숙박시설밖에 없다. 창원시내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저수지까지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호텔인터내셔널(055-281-1001), 창원관광호텔(283-5551), 올림픽관광호텔(285-3331), 남선호텔(281-0071) 등이 있다. 저수지에서 17㎞쯤 떨어진 창원시 북면 마금산온천일대는 라듐이 풍부한 유황천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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