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하고 있다." 김경욱(31)씨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그는 30대가 됐으며, 결혼을 했고, 직장을 가졌다. '생활인'이 됐다. 그 변화가 자신이 쓰는 소설에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작품 세계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심사위원의 평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단편 '고양이의 사생활'('문학·판' 2002년 겨울호)에 대해서도 그는 "나의 지속적 문제 의식에 바탕해 쓰여졌으면서도 문학적으로 새로운 출발점 위에 놓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고양이의 사생활'은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해진 세계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김경욱다운' 소설이다. 전직 학원 강사인 남자가 '고양이'라는 ID를 가진 10대 소녀와 만나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은 언뜻 소외된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와 자의식 없는 신세대의 발랄한 감각을 묘사한 것으로 읽힌다. 생일파티 해주기, 술 마시기, 집 찾아가기.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아이와 실제로 친해지기까지 하나하나 밟아가는 단계다. 그런데 화자가 들려주는 얘기는 어쩌면 전부 가짜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고양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의 종료 시그널이 컴퓨터 화면에 뜬다. '고양이와 친해지기'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게임이었을까. 남자가 '고양이'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로 소설을 맺으면서 김경욱씨는 이 의문을 다시 한번 뒤집는다.
"가상현실로, 실제세계로, 가상과 실제가 섞인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독자의 해석에 달렸다. '고양이의 사생활'은 완결된 텍스트가 아니다." 구조가 정교하고 탄탄해졌거니와,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모호해진 오늘날에 대한 독자의 적극적인 성찰이 요구된다는 데서 그의 소설은 세련되고 깊어졌다.
막 30대에 접어들었지만 김경욱씨는 등단 10년째인 소설가다. 20대에 발표한 작품들에 대해 그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리고 미숙했다"면서도 "그 시기에만 가능했던 사고와 어법과 감각이 있었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자기만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다. 20대에 이미지와 감각을 좇는 '영화적 글쓰기'의 작가였던 그가 이제 현실에 좀더 큰 무게를 두게 됐다. 삶이 이전만큼 영화와 닮아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삶에 대한 안목이 조금씩 깊고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내 문학적 이력이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데 의미를 둔다. 예전에 쓴 작품이 아닌, 앞으로 쓸 작품을 생각할 때 가슴이 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71년 전남 광주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로 등단 2002년 9월∼현재 울산대 국문과 교수 소설집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 '베티를 만나러 가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장편 '아크로폴리스' '모리슨호텔' '황금사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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