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강수연이 '송어'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여인천하'로 안방극장을 평정한 다음 선택한 영화는 스릴러 멜로 '써클'(감독 박승배).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걸어서 하늘까지''넘버 3''게임의 법칙' 등 170여 편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았던 박승배 감독의 데뷔작으로 강수연은 연쇄살인마를 뒤쫓는 오현주 검사 역을 맡았다.6명의 여자를 죽인 살인마 명구(정웅인). 오현주 검사는 그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명구는 귀신의 사주를 받고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편다. 국선변호사 김병두(전재룡)는 명구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을 수 있다고 변론한다. 명구는 매일 저녁 여섯 명의 흰옷 입은 귀신이 자신을 찾아왔다거나 그들이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는 등 횡설수설을 거듭한다. 김병두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소급 최면술까지 동원해 '나는 1930년대 화가 김광림이었다'는 명구의 진술을 얻어낸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써클'은 '비밀' 등의 환생 모티프에 '양들의 침묵' 스타일을 가미한 스릴러. 그러나 용의자를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고 성 추행하는 검사나 벽에 머리를 부딪혀 자해하고 검사를 덮치는 용의자, 용의자의 반말에 존대말로 대답하는 국선변호사 모두 조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어설픈 수사극은 1930년대의 치정극과 맞물리며 묘한 긴장감을 얻는다. 김광림과 김광림의 스승, 그리고 기생 산홍의 삼각관계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스승의 연못에서 시체 한 구까지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설령 기생 산홍과 화가 김광림이 검사와 범인으로 환생했다고 해도 왜 명구가 연쇄살인을 저질렀는지는 끝내 분명하지 않다. 불륜의 남녀가 불가능한 사랑을 비관해 죽음을 택하는 장면은 자못 비장한 정서를 자아내지만 이 정서를 뒷받침하는 것은 '실락원'에서 베낀 듯한 에피소드다. 관록의 촬영감독 출신다운 장중한 톤과 만듦새는 중간 수준 이상이지만 인과론을 용감하게 무시한 최루성 멜로는 시대착오적이다. 21일 개봉.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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