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언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여러 가설 중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화장의 기원은 인류의 생존만큼이나 오래됐다는 주장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기본적 본능인데다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이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또는 신분이나 계급의 표현 수단으로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화장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 여성들은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빛나는 젊음을 일부러 감추려는 듯이 화장하는 젊은 여성들이나 동네 시장에 가면서도 찍고 바르는 여자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프랑스계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코리아는 최근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업계 3위에 올랐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여성들은 하루 5∼6종의 화장품을 사용하는데 비해 한국 여성들은 하루 평균 20종을 사용한다"며 "한국 시장의 수익성이 좋아 앞으로 투자를 더욱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 그런데 이제는 한국 남성들도 화장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LA타임스는 얼마 전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에 대해 보도했다. 20대의 대학생부터 50대의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화장은 물론, 성형수술도 마다 않는 한국 남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외모나 미용이 자신들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중요 수단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대는 취업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중년 직장인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남성 화장품의 최대 고객은 중년층이라는 점도 곁들였다.
■ 최근 우리 상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현상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간단한 통계만 봐도 그렇다. 외환위기 이후 대졸자 수는 약 18만명 증가한 반면 주요 기업의 일자리 수는 32만6,000개가 줄었다. 또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는 이제 옛말이 되고 이제는 '38선(38세도 선선히 퇴직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 한국 근로자의 평균 퇴출연령은 35세로 선진국보다 10년이 빨랐다.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화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외신 보도 하나가 매서운 초겨울 바람보다 더 차갑게 다가온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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