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천년은 갈 겁니다."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인 도편수 신응수(61)씨가 경복궁 근정전(勤政殿·국보 제 233호) 해체·복원 작업을 마쳤다. 도편수는 고건축의 기본틀부터 재목 가공, 단청, 와공, 석공 등 전반에 걸쳐 공사를 책임지는 총감독. 12일 일반공개를 앞두고 신씨는 휴일인 2일 다시 한번 근정전 주변을 관람객들 사이에서 꼼꼼히 둘러보았다. 1991년부터 경복궁 복원작업을 총지휘해온 그는 그 동안 경복궁 흥례문, 창경궁, 수원 화성, 단양 구인사 조사전, 청와대 상춘재 등 국내 주요 고건축물을 도맡아 고치고 지은 대목(大木)이지만 근정전은 각별하다.
"근정전은 문무백관의 조회를 비롯해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입니다. 궁궐의 상징적 건물을 130여년 만에 제 손으로 고쳐 세우고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목수로서 궁궐을 짓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최고의 꿈이자 생애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가 시대를 잘 만난 덕이죠."
3년 10개월 만에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 근정전은 경복궁 내에서는 물론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2000년부터 72억원을 들여 진행해온 이번 보수 공사는 2층 전체를 해체하고 건물을 떠받치는 주기둥 4개를 교체하는 대역사였다.
"처음 기와를 뜯어 보니 주기둥 세 개는 추녀가 꽂히는 부분이 부러졌고, 나머지 한 개도 휘어서 금이 갔어요. 기둥이 지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이지요. 따라서 이번에는 덧집을 만들어 씌우는 공법을 택했습니다."
그는 이번 공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기둥재목을 찾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높이 18m, 직경이 최소 70㎝인 적송을 국내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미국산 더글러스 소나무를 수입해서 썼다.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정도로 자라려면 수령이 300∼400년은 돼야 하는데 산림청에도 의뢰하고 직접 강원도를 샅샅이 뒤졌지만 없었습니다. 일제 때 너무 많이 베어버린 결과죠."
그는 근정전 해체·복원 과정에서 확인한 조선시대 건축에 대한 책을 낼 계획도 갖고 있다. 고종 4년(1867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건물이 그대로 유지돼온 구조와 형태는 일반 가옥이나 사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
그는 2009년까지 계속될 경복궁 복원의 마지막 고비로 광화문 복원을 꼽았다. "건물의 방향과 위치가 잘못된 광화문을 볼 때마다 처량한 생각이 들어요. 요즘엔 처마곡선이 더욱 처져 보여요. 옛 조선총독부 건물도 헐고 흥례문을 세웠는데, 광화문도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죠."
고종때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최원식 대목 이후 조원재·이광규 대목을 잇는 신씨는 충북 청원 출신으로 17세 때부터 한옥 짓는 현장에 나가 잡일을 거들다가 이광규 문하에 들어가 33세 때 수원성 건축공사 도편수가 된 입지전적 인물. 그는 경복궁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직후인 1991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2일 오후 2시 근정전 앞뜰에서 국무총리와 각 부처 주요인사, 문화예술인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수준공 행사를 연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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