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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잊을 수 없다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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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잊을 수 없다는 환상

입력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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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야 잘산다’는 말은 아끼지 않고도 잘 사는 사람이 많아서 생긴 구호이고, ‘얼굴보다 마음씨가 중요하다’는 건 여전히 얼굴의 힘이 마음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말이다. 구호와 표어는 현실을 배반하며 견고한 관성 체계를 거꾸로 증명한다.떠난 사람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 사람을 죽어도 잊을 수 없어”라는 말은 아마 잊지 말아야 할 그를 너무 자주 잊는다는 깨달음 때문에 자기 최면을 거는 말일지도 모른다.

일본 영화 ‘환생’은 죽은 이에 대한 잊지 못할 사랑을 씹고, 또 씹는다. 많은 사람들은 ‘잊지 못할 사람’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을 거론할 때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간사하고, 망각과 친숙한 것이어서 잊지 못할 그 사람의 대부분을 잊고 만다.

그가 어떤 미소를 지었던가, 그가 어떤 말을 했던가를 모조리 기억하기란 어렵다. 우리 머리 속에 남아있는 그는 그저 우리가 간직하고 싶어하는 단편적 기억만으로 얼기설기 엮어진 모습일 뿐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죽은 애인을 잊지 못하고 그와 찾았던 바닷가에 앉아 그를 추억한다. 죽었던 많은 이들이 살아오지만, 그는 살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하는 다른 남자(초난강)는 죽은 자들의 신체 일부가 있어야 환생한다는 법칙을 알아내고, 그가 남긴 유일한 신체 기관인 기증된 안구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여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여자는 죽은 여자의 애인이자 자신의 친구를 환생시키려 노력하는 그를 보며 꾹꾹 눌러 두었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죽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머리 속의 생각일 뿐, 그녀의 몸과 마음은 ‘(곁의)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과거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란, 현재의 사랑의 부재 증명이 아닐까. ‘내가 곁에 있어도 그립다는 그대에게 오늘은 사랑한다 말을 할거야’라는 노래도 있지만 사랑이란 현재형일 때나 ‘잊을 수 없다’는 주문을 머리 속에 새기는 것이다. 어, 그럼 없는 것들이 옛 사랑 운운한다는 말이 되는데?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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