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대박 영화의 시나리오를 꼼꼼히 분석한 어느 연구자에 따르면 액션 30%, 코미디17%, 선악 대결 13%, 로맨스 12%, 특수효과 10%에 줄거리 10%, 음악 8%의 배합이 흥행의 황금비율이며 이 비율에 가장 근접한 영화는 '토이 스토리 2'이다. 이런 분석틀을 에로티시즘 영화에 적용해 보자. 에로 영화에서 최적의 섹스 신 비율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관객을 지루함으로부터 구원하는 동시에 아드레날린 분비를 최고로 끌어 올릴 만한 영화의 모범 사례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최근 개봉한 '정사'(사진)가 내세우는 '35분의 섹스 신'이라는 카피는 에로티시즘 영화를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119분의 러닝타임에 35분이 섹스 신이니 약 30%의 비율. 그 숫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서 몇몇 일화가 떠오른다. 언젠가 어느 에로 비디오 프로덕션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말했다. "에로 비디오 러닝타임 90분에서 섹스 신의 비중을 50분 이하로 끌어내리는, 가능하다면 30분 정도만 에로 신을 넣고 나머지는 스토리로 채워 완성도 있는 에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는 에로 비디오의 예술성(?)은 섹스 신의 비중을 줄이고 이야기를 좀더 강화하는 데 있다고 본 것 같다.
또 한 명의 제작자 이야기. 그를 인터뷰하러 갔을 때 갑자기 중요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죽이기는 했지만 대강의 내용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골자만 간추리면 이렇다. "그래 김 작가, 보내준 시나리오 잘 받았어. 내용은 좋은데, 베드 신이 너무 적은 거 같아서…. 거기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한 번 더 하고, 막판에 한 두 번 더 집어넣으면 좋을 거 같은데?" 그는 적절한 횟수의 섹스 신과, 그럼으로써 확보되는 '에로틱 타임'이 관건이라고 본 것 같다.
일반적인 에로비디오에서 섹스, 샤워, 노출 신 등을 모두 포함한 에로 신이 러닝타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 이상이다. 횟수는 10∼12회 정도. 빈도로 본다면 3∼4분에 한 번 꼴이다. 재미있는 것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에로비디오계의 지존이던 봉만대 감독은 충무로에 진출하면서, 에로 신의 시간 비율은 줄이고, 횟수는 유지하되, 에로 감도는 높이는 '초절정 절충 내공'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에로 영화의 적절한 섹스 신은 어느 정도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섹스 신의 길이와 성적 감흥이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반비례할 때도 있다. 가끔 러닝타임의 80% 이상을 살색 화면으로 채우는 에로 비디오를 만나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런 영화 볼 때는 십중팔구 패스트포워드(FF) 기능에 의존하거나, 보다가 졸게 된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에로 신의 관건은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절제된 충격이며, '정사'의 섹스 신 35분은 그런 면에서 꽤나 충실한 시간이다. 여기서 아쉬움 하나. 뿌연 화면 처리만 없으면 더 충격적이었을 텐데….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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