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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평준화 해제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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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평준화 해제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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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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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전국 주요 도시마다 이른바 명문고가 있었다. 길거리에서나 버스에서나 이들 학교 학생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어깨를 펴지 못했다.지역마다 고교의 순위가 일렬종대로 매겨졌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가 평가의 잣대가 됐다. 교복과 배지는 3년간 학생들의 자랑거리도 됐고 족쇄도 됐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그들에게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는 공부를 잘하고 돈푼깨나 있는 집은 일찌감치 명문고가 있는 도시로 자식들을 유학 보냈다.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객지에서 혼자 밥해먹고 빨래하는 자취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과외는 또 얼마나 극성이었는지 모른다. 대도시의 중학생은 너나 할 것 없이 과외를 하거나 학원을 다녔다. 돈이 많은 집은 과외, 없는 집은 단과반 학원으로 구분됐다. 지금도 중학교 사교육이 심각하다고 난리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인 30년 전의 모습이다. 지금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학력저하의 주범으로 평준화가 난도질 당하더니 강남 아파트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그 대책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평준화로 전체 학력이 높아졌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도 학교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상류층이 모이다 보니까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런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사실 평준화 논란의 핵심은 자기 자식들의 성적과 관련한 부모들의 태도다. 공부를 잘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 거의 대부분은 평준화 해제를 원한다. 이들은 '똑똑한 우리 자식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서 더 높은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고 있다.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또 하나의 부류는 기득권층이다.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와 지도층으로 자리잡은 이들에게 평준화는 학력을 떨어뜨리고 국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비칠 것이다. 성적이 처지는 90%의 학생보다 우수한 10%가 이 나라를 움직인다는 뿌리깊은 선민의식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평준화가 해제되면 생계가 파탄 난다" "이민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대다수 학부모의 애절함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평준화 해제 논쟁에서 지방은 아예 제외돼 있는 점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서울대 정운찬 총장 등 일부 인사들은 지방부터 시범실시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에 비해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방은 평준화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3년 전 울산 군산 익산시가, 재작년에는 고양 부천 안양 과천 의왕 군포시 등 수도권지역이 학부모들의 요구로 평준화를 실시했다. 올들어서도 경기와 강원, 경남·북, 전남 등 10여 개 중소도시에서 평준화 도입 요구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평준화가 해제된다는 것은 입시전쟁이 3년 앞당겨지는 것이다. 그로 인해 늘어나는 사교육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아이들은 입시 스트레스를 또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우리 사회가 과연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평준화는 학벌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풍토가 깨지지 않는 한 존속돼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평준화 해제를 논하기에는 준비된 게 너무도 없다.

이 충 재 사회2부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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