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탤런트가 됐겠죠." "인천공항 전용도로에서 (차를 시속)200㎞로 밟을 때가 제일 신나요."2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CJ나인브릿지클래식 우승으로 한순간에 스타덤에 오른 안시현(19·코오롱)은 '끼'와 '깡'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선배 '프로님'들은 물론 쟁쟁한 LPGA 스타들과의 우승 경쟁에서 오는 위축감. 그것도 꿈에도 그리던 생애 첫 우승. 심장박동을 억누를 길이 없는 중압감을 이겨낸 것은 청바지가 잘 어울릴 것 같은 19살 아가씨의 재기발랄함과 타고난 근성이었다.
오전 6시30분 기상, 2,000개 볼 때려
마지막 18번홀. 세컨드 샷을 핀 옆에 붙인 뒤에야 우승을 실감했다는 안시현의 눈가는 물기로 젖기 시작했다. 이글퍼팅으로 화려한 우승세리머니를 마친 안시현. 어머니 안정옥(45)씨와 캐디백을 맨 골프스승 정해심(43)씨와 차례로 포옹하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눈물에는 지난날 고생과 설움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참 길고 먼 우승여정이었다. 좀처럼 울지않는다는 안시현이다. 그러나 4년 전인 1999년 그는 눈이 부어올라 안 보일 정도로 밤새 펑펑 울어야 했다. 골프를 시작한 지 4년째. 골프치는 일이 마냥 신나기만 했던 어린 안시현은 아버지 사업이 IMF의 여파로 어려움에 처하면서 더 이상 골프를 칠 수가 없었다. "그때 프로님(정해심씨)이 모든 것을 뒷바라지하겠다고 하셨어요" 안시현의 아버지 안원균(45)씨의 오랜 지인이기도 한 정씨는 딸을 데려가겠다며 합숙훈련장(인천 IJ 골프아카데미)으로 찾아온 아버지를 돌려보내고 묵묵히 안시현을 가르치며 돌봤다. 오전 6시30분 일어나 밤 10시30분 잠들 때까지 숟가락을 놓으면 골프채를 잡아야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하루에 때려보낸 볼이 2,000개가 넘는다. "친구와 스티커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고도 싶고 남자친구와 영화도 보고 싶었다"는 안시현은 클럽을 던지고 싶을 때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 비자신청 해야죠' 신인왕 도전
그에게는 또 다른 굴곡이 남아있었다. 지난해 2부투어 상금왕을 거쳐 올해 정규 투어에 데뷔한 안시현은 지독히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3번의 준우승. 지난달 하이마트대회 최종라운드에서 연장접전 끝에 또 다시 우승을 내줄 때는 너무 속이 상해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동갑내기 김주미(19·하이마트)와는 지난해 한국여자오픈에서 캐디백을 매줬을 만큼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 하지만 신인왕을 놓고 어쩔수 없이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했던 라이벌이었다. 안시현의 우승이 확정된 뒤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도 김주미였다. "늘 우승축하만 해주다가 주미에게 우승 축하를 받으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이제 안시현은 당당한 LPGA투어 챔피언이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미국을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안시현은 2주 후에 LPGA 투어 챔피언들의 왕중왕전으로 열리는 모바일토너먼트에 출전하기 위해 서둘러 비자부터 신청해야 한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터넷 팬들을 위한 보답도 해야 하고 2개월전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이제는 아무 부담없이 김치냉장고와 냉동고도 사드릴 수 있게 됐다.
"이상형은 오래 전부터 (영화배우)정준호예요." 정준호가 라운딩을 제의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해야죠. 그래도 여자니까 좀 튕기다가(웃음)."
"말이 안 통하면 몸으로도 다 통할 수 있어요." 내년 미국 무대에서 다시 신인왕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당찬 표정의 안시현은 그렇지만 가장 큰 꿈은 "어떤 자리에 있어도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연예인 보다 낫다' 인터넷 인기몰이
LPGA투어 첫 승 소식이 알려진 3일 안시현의 인터넷 카페인 '프로골퍼 안시현(cafe.daum.net/ansihyeon)'은 70여명이었던 회원수가 2,000명을 돌파하는 등 사이버상에서도 안시현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카페 회원으로 가입한 네티즌들은 우승을 축하하면서 "골프도 잘 하면서 얼굴까지 예쁘다" "웬만한 연예인보다 낫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시현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분이 좋다. 국내 여자골프계에는 나보다 훨씬 예쁜 선배들이 많다"며 겸손해 했다.
/제주=김병주기자 bjkim@hk.co.kr
안시현 프로필
―생년월일 : 1984년 9월15일
―출생지 : 인천
―신체조건 : 170㎝, 58㎏
―출신교 : 인천 연화초등―청량중―인명여고
―소속사 : 코오롱(엘로드)
―프로데뷔 : 2002년 4월
―혈액형 : B형
―가족관계 : 안원균, 안정옥씨의 2녀 중 장녀
―골프입문 : 94년 연화초등 5년때
―좋아하는 음식 : 생선회, 스파게티, 김치찌개
―애창곡 : 발걸음(에머랄드 캐슬)
―이상형 : 정준호(영화배우)
―별명 : 시봉(친구들이 이름을 본 따 붙여줌)
―취미 : 영화, 쇼핑, 드라이브
―한달 용돈 : 50만∼60만원
―주요대회 성적 : 드림투어 3회 우승 및 상금랭킹 1위(2002년), 한솔레이스 2위, 파라다이스 인비테이셔널 2위, 하이마트컵 2위(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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