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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6> 대북 원조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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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생명 풀무꾼 원경선 <36> 대북 원조활동

입력
2003.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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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는 이제 전세계 어려운 나라라면 어느 곳에나 기아봉사단을 보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에는 기아봉사단은 차치하고 원조의 손길조차 뻗치기도 쉽지 않다.재작년 겨울인가 대책기구와 농협, 축협 등 여러 단체가 공동으로 북한에 보낸 500마리의 산양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러 북한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공산당 간부나 정부 관리들이 중간에서 구호·지원품을 빼돌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전달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인데 세계 구호기관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세계식량계획 등도 이를 감시하기 위해 가끔씩 북한에 시찰단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보낸 산양은 다행히 평남 상원군의 국영 농장에서 잘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젖을 짜서 먹으라고 보내준 산양에서 젖 짠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3억원인가를 들여 덴마크에서 구입한 젖 짜는 기계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아서 새 것 그대로였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현지 담당자에게 따져 물으니 묵묵부답이었다. 알고 보니 여름에는 산에서 들풀을 베어다 먹이며 젖을 짤 수 있지만 겨울에는 먹이가 없어 젖을 못 짜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에는 콩깻묵이 산양먹이로 제격이지만 사람 먹을 거리도 없는 마당에 산양먹이는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였다. 우리는 허탈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안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대책기구가 북한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으로 처음에는 평양 제3병원에 의료시설을 보냈다. 이후에는 산양이나 식량 등을 주로 실어 보냈다. 식량은 중국 도문에서 북한 기차에 실어보냈는데 양이 많아 한번에 못 싣고 몇 차례에 걸쳐 날라야 했다. 그런데 한번 식량을 싣고 북한 쪽으로 떠난 기차는 한참이 지나서야 나타나 수송작업에 애를 먹기가 일쑤였다. 기차에서 화물을 내릴 지게차 같은 기계가 없어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하역을 하다 보니 그만큼 속도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대책기구에서는 중국 지린(吉林)성 화룡(和龍)현에 있는 재중동포 교회의 농장도 지원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가 고안해 낸 새로운 형태의 북한돕기 루트다. 농장은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됐다. 한번은 풀무원에서 훈련시킬 재중동포를 선발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거기서 탈북자를 돕고 있던 재중동포인 교회관계자를 만나게 됐다. 급하게 돈을 구한다며 동동 구르고 있기에 지갑을 모두 털어 건네준 것이 인연이 돼 교회에서 안정적으로 탈북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아예 농장시설을 제공했다. 이후 교회에서 운영하는 농장은 탈북자들의 임시거처로 이용됐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감시가 강화되는 바람에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 졌다.

이제는 농장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중국 북동부 지방에는 나무나 풀들이 오랫동안 쌓여 형성된 토탄층이 넓게 퍼져 있는데 이것을 적당히 발효시키면 퇴비로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점에 착안해 최근 농장에 3억원을 들여 퇴비화 설비를 마련했다. 퇴비를 생산해 농장에서도 사용하고 북한으로 실어 날라 비료로 사용할 목적에서다. 시험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생산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내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를 만들고 지금껏 활동해 온 궁극적인 목표는 다름아닌 평화에 있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세계평화로 향하는 길을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또 세계적인 빈곤문제를 치유하는 방법은 나눔의 실천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눔은 이념과 종교의 경계까지 초월하는 사랑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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