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 중 멕시코 칸쿤의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장 앞에서 한국의 농업 지도자 이경해씨가 자살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이씨처럼 농업 개방을 반대하는 국내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계 무역 자유화의 흐름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까지 가입한 우리나라가 농산물 시장 개방을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다른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상대국이 원하는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처지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해법은 한국농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래야 해외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와도 우리 농업은 자생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농업 경쟁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 중 하나는 농산물 통합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안성 배, 충주 사과 같은 지역 브랜드만 5,000개가 넘는다. 그렇지만 오렌지 하면 '델몬트'처럼 딱 떠오르는 대표적인 통합 브랜드가 없는 게 문제다.
이처럼 품종이 동일한데 지역 브랜드만 많다 보니 소비자의 선택만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또 지역별 소규모 출하로 동일한 규격과 표준에 따른 대량 상품 공급에는 한계가 있으며 마케팅 효과가 분산돼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통합 브랜드의 성공 사례로 흔히 뉴질랜드 키위 '제스프리'가 거론된다. 현재 제스프리는 세계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뉴질랜드 농가들은 지금의 우리 농업계와 마찬가지로 경쟁력이 저하돼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들은 개별 수출이 힘들자 영농조합을 만들어 자국 키위를 제스프리라는 고급 브랜드로 개발했다. 그리고 유통구조를 개선했다. 복잡한 유통 구조를 축소시켜 소비자와 산지를 직접 연결시켰다. 이제 제스프리는 고급 키위의 대명사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다.
우리도 농산물 통합 브랜드를 개발해야 한다. 다행히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 유통구조 개선에 앞장서는 과일전문 유통업체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유통구조 개선은 소득증대를 바라는 농가와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의 바람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 해결책이다. 우리 농업이 벼랑에 섰지만 배수진을 치면 살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한국농업의 규모화, 현대화, 표준화로 글로벌 농산물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병 환 메갈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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