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에 살면서]이 가을, 새길을 찾으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서]이 가을, 새길을 찾으며…

입력
2003.11.03 00:00
0 0

지난 일요일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의 빛을 보기 위해 여느 때처럼 무악산에 올랐다. 산의 한 모퉁이,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 사이로 봉원사의 밝은 지붕이 눈에 띄었다. 문득 지난 여름 조계사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하던 지난해 여름, 나는 외국인이 절에 머물면서 스님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사찰 민박 프로그램인 '템플 스테이'에 참가했다. 서울을 벗어나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 시내의 조계사에서 1박 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아일랜드 등 먼 나라에서 온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였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수련을 위한 옷으로 갈아 입고 커다란 탁자에 둘러앉아 스님으로부터 명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스님의 시범을 따라 한시간 동안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식사를 하면서 각각의 음식과 그릇들은 그 기능이 다를 뿐 아니라 사용하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 중 두 명이 합류했다. 절에서는 절대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그들은 밥을 남겼다. 그러자 스님은 남은 음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해보자고 했다. 가벼운 제안과 농담 섞인 토의 끝에 우리는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스님과 자원 봉사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남은 음식은 스님과 자원 봉사자들이 함께 나눠 먹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절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물과 오이 한 조각으로 음식이 담겨져 있던 그릇들을 씻고 그 물을 모두 마셨다. 절에서의 이러한 식사방법은 아마 인간의 소박함을 실천하기 위함인 것 같다. 절의 이곳 저곳을 둘러본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처님에게 삼배를 드렸다. 인구 천만명의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스님이 읊조리는 조용한 법송을 듣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찬물 목욕과 조미료가 전혀 없는 채식은 사찰의 검소한 생활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 아침 기도와 명상은 헌신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겸손에 대해 느끼게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나는 조계사에서의 짧은 시간동안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다. 물론 지난 일요일의 산행에서도 가을 풍광의 절정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자연 속을 걷는 것이 나로 하여금 평정심을 찾게 만든 것이다. 돌고 도는 계절의 변화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각성하게 하며 우리들의 삶에 있는 새로운 길을 찾도록 만든다. 이번 가을 역시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가려는 첫 걸음이 아닐까.

콜린 소프 영국인 주한 영국문화원 영어강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