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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개발독재 시대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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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개발독재 시대의 종언

입력
2003.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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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10월31일 퇴임했다. "쫓겨나는 것보다 내 발로 걸어나가는 것이 좋다"면서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간 그의 퇴장으로 아시아의 한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와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대만의 장제스·징궈 부자, 싱가포르의 리콴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한국의 박정희 등은 강압통치로 장기집권 했던 아시아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영욕의 역사를 이끌었다.

마하티르는 박정희 리콴유 장징궈와 함께 경제발전에 성공한 지도자란 점에서 다른 독재자들과 구별된다. 다른 독재자들은 '개발의 열차'를 놓친 채 빈곤과 혼돈을 남기고 유혈혁명으로 축출됐다.

1981년 총리가 된 마하티르는 팜오일 주석 고무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던 말레이시아에 조선 자동차 전자 등 중공업 및 제조업을 일으켜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돌파했다. "말레이시아 볼레!"(말레이시아도 할 수 있다)가 그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를 거치며 손상된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 일으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말레이시아 볼레!"는 "잘 살아 보세"란 우리의 새마을운동 슬로건과 흡사했다. 마하티르는 실제로 박정희 시대의 개발정책을 모델로 삼았다. 그는 80·90년대에 자주 한국에 와서 중공업과 자동차 산업현장을 돌아봤다. 관리들을 보내 새마을교육을 받게 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모델이 됐다. 그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정책을 교본으로 삼았다. 개발독재는 아시아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하는 한 방편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은 지금도 그들의 모델인가. 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은 새로운 모델 제시에 실패했다. 이제 그들은 "한국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경제성장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국은 독재를 추방하는 데 성공했지만, 오랜 독재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30년 독재의 부작용이 십 여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억눌렸던 욕구들이 분출하고, 각 집단과 계층 간의 이기주의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사회혼란, 정치 부패, 이념의 혼돈 등으로 한국은 좌표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잘 살아보세" 란 새마을 노래를 부르며 일사불란하게 경제발전을 위해 뛰던 한국이 아니다. 경제성장 이후 한국과 같은 혼란 없이 민주화로 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아시아는 불안하게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화 이후의 사태에 대해 지나치게 자기비하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혼란은 분단국이라는 현실에서 온 부분이 많다. 남북분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반세기에 걸쳐 대립해 온 역사를 돌아본다면 이 정도의 혼돈은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독재 역시 분단현실 속에서 더욱 혹독했고, 그만큼 희생도 컸으니 반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는 인종갈등과 이슬람의 노선갈등 등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마하티르의 뒤를 이은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총리는 전임자와 달리 좀더 유연하게 정국을 이끌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전임자와 다른 새로운 리더십으로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마하티르는 하야를 외치는 군중시위나 유혈사태 없이 22년 권좌에서 무사하게 내려왔다. 아시아에서 장기집권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경제성장으로 개발독재를 정당화하던 시대도 끝났다. 이제 아시아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모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난 십 여년 간 치른 혼돈과 갈등이 새 질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시련을 잘 극복해야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싸우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아시아의 한 시대를 넘기며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깊은 각성을 기대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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