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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81>가을열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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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81>가을열매 <2>

입력
2003.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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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매 가운데 사과나 딸기, 월귤 등은 맛이 좋습니다. 우리가 흔히 명감나무 혹은 망개나무(진짜 망개나무라는 나무는 따로 있습니다)라고 부르는 청미래덩굴도 그럭저럭 들쩍지근한 맛을 냅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뒷산을 누비며 그 열매를 따먹던 기억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반짝이는 겉모습과 달리 씹으면 푸석한데도 자꾸만 손이 가던 그 열매 말입니다.하지만 백당나무, 자금우, 백량금, 덜꿩나무, 화살나무, 매자나무, 피라칸사, 그리고 크리스마스 장식에 많이 쓰는 호랑가시나무 같은 나무의 열매는 아무리 먹음직스럽고 빛깔이 고와도 아무도 먹지 않습니다. 맛이 없기 때문이지요. 약으로 먹으면 몰라도요.

붉은 빛깔을 사람처럼 잘 보는 새들은 어떨까요? 나무 열매가 겨우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으로 보면 새들도 즐겨 먹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토리처럼 떫고 맛이 없어도 영양가만 있다면 비상식량으로라도 쓸 텐데, 이들 열매엔 양분과 수분도 적습니다. 맛도 영양도 별로인데 나무는 왜 구태여 붉은 열매를 만들어 새들을 자극할까요.

언제나 하는 얘기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식물의 행태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근거로 추정해볼 수 밖에 없습니다. 궁금증에 대해 정답을 꼭 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우선 열매를 보기 좋게 하고 맛과 영양가도 있게 하려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포장과 내용이 모두 좋은 상품이 아닌 겉모습만 번듯한 열매를 만들어 눈속임을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좀더 유력한 가설로는 열매를 만드는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라 일부러 맛없는 열매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보기도 좋고 맛도 좋으면 새들은 열매가 익기 무섭게 한꺼번에 몰려들어 모두 먹어치우고, 비슷한 시간과 장소에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배설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열매 속 씨앗들이 두고두고, 멀리멀리, 고루고루 가도록 하는데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열매에 약간의 독성을 넣어 조금씩 먹으면 괜찮지만 많은 양을 먹으면 탈이 나도록 하는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후자의 가설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빨간 열매를 보고 먹으러 갔다가 맛이 없어 이내 그 자리를 떠났지만 이내 다시 붉은 색깔에 유혹을 받아 다시 찾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더러는 열매를 먹지 않고 삼켜버리기도 하고요. 이런 방식으로 새들의 '방문'을 조절해 씨앗들이 멀리 퍼지도록 합니다.

달고 즙이 많은 열매들은 왜 이런 걱정이 없는 것일까? 벚나무 열매인 버찌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무 스스로 열매가 익어가는 시간에 차이를 두고 조절합니다. 한 줄기에서도 과일의 익는 속도를 조절해 붉기도 파랗기도 노란빛을 띄기도 하는 열매가 다양하게 달려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제각각이냐구요? 사람도 살아가는 방식이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같은 일을 두고도 완전히 다른 해석과 주장이 난무하는 요즘,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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