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인수합병(M& A) 열풍을 일으키며 국내 은행권을 휘젓고 있다. 최근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스탠다드차타드, HSBC, 씨티 등 외국 은행들이 한미은행과 제일은행 사냥에 발벗고 나섰다. 여기에 미국계 할부금융사인 GE캐피탈과 투자은행인 ABN암로 등도 국내 은행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하나은행은 자사주 매각을 위해 외국계 투자자들을 물색하고 있다.이미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은 대주주인 ING(3.78%)와 골드만삭스(1.15%)를 포함해 외국인 지분이 70%에 이르기 때문에 외국자본의 국내금융 독식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한미은행 대주주인 칼라일은 이미 지난해말에 모건스탠리를 M& A 주간사로 선정,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지분(36.6%) 매각을 추진해왔으며, 조만간 공개경쟁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입찰에는 이미 한미은행 주식 1,982만주(9.76%)를 매입한 스탠다드차타드를 비롯해 최근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를 통해 제일·한미·외환은행 지분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HSBC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씨티은행과 ABN암로, GE캐피탈 등이 관심을 갖고 있다.
HSBC는 그러나 한미은행보다 제일은행에 1차적인 관심을 두고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제일은행 인수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HSBC가 5년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HSBC의 제일은행 인수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안다"며 "뉴브리지가 12월초 이사회에서 지분매각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자사주 19% 가운데 15%정도를 매각하기 위해 일본 신세이은행과 벌인 협상이 최근 결렬되자 다른 외국금융기관 2∼3곳과 접촉을 하고 있다.
최근의 은행 M& A는 단순 시세차익을 목표로 한 외국 펀드가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유수의 외국 금융기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금융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씨티나 HSBC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는 현재 점포 몇 곳만 갖고도 막강한 영업력을 과시하고 있는데 전국적인 점포망을 갖춘 시중은행까지 인수하게 되면 국내 금융환경 자체가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긴장감을 표시했다.
이 같은 외국인의 '안방' 공략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계 대주주의 평균 지분율이 20%를 돌파했다. 국민·우리·하나·신한·조흥·외환·제일·한미 등 8대 시중은행의 외국계 대주주의 평균 지분율(소액 투자자 지분 제외)은 10월 말 현재 21.7%로 작년말(12.5%)보다 크게 높아졌다.
금융계 관계자는 "국내 산업자본의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외국계 자본의 은행 지분 참여는 더욱 증대될 것"이라며 "선진 금융기법 전수 등의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국가 경제의 심장격인 은행을 모조리 외국인 손에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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