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신문 가판을 보고 비정상적으로 신문과 협상하는 것을 일절 금지하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 인터넷언론사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가판 구독금지의 명분이다. 그러나 8개월여가 지난 지금 노 대통령이 내건 이 취지는 상당부분 퇴색했다. 공무원들이 가판이 나온 뒤 언론사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와 기사 축소 또는 삭제, 제목 변경을 요구하는 관행이 여전하기 때문이다.대통령 직속인 국가정보원의 고위 관계자는 10월 초 본보 가판에 소관업무와 관련한 기사가 보도되자 전화를 걸어 제목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지난 달 말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 통과가 보류된 것에 대해 '총리 이하 국무위원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보도가 실린 가판을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또 국정홍보처 모 과장은 정순균 차장의 아시안월스트릿저널(AWSJ) 기고문 파문과 관련해 '8월26일자로 징계위가 열릴 것'이라는 가판 기사를 보고 전화를 걸어 제목 수정을 요구했다. 외교부 모 국장은 7월에 '김운용 IOC 위원 집 앞에서 체육인들이 김 위원 지지시위를 할 것'이라는 가판 기사에 대해 공보관도 거치지 않고 직접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복지부의 한 과장급 관계자는 최근 복지정책을 비판한 기사를 지적, 전화로 제목을 바꿔달라고 요구한 뒤 "전화한 건 비밀입니다"라며 겸연쩍어 하기도 했다.
본보 등 조간신문 9월16일자 가판에 김진표 경제부총리의 '태풍 매미 상륙시 골프 휴가' 기사가 보도되자 김 부총리 자신이 일부 언론사에 직접 전화해 '선처'를 부탁했다. 재경부 김광림 차관은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재경부는 공보관은 물론 기자들과 친분이 있는 전직 관료들까지 동원해 김 부총리 '방어'에 나섰다.
대검의 한 간부는 "검찰 관련 보도는 수사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등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경우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가판 참고 및 언론사 접촉이 불가피함을 주장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청장에게 보고한 뒤 언론사를 찾아가기도 하고 전화로 청탁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편집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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