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올해는 20일) 자정이면 전세계에서 '보졸레누보'가 동시에 출시된다. 올 여름 유럽에 살인적인 폭염이 엄습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포도의 생육상태가 그 어느 해보다 좋아 보졸레누보를 포함한 2003년산 포도주에 기대가 크다. 국내에서도 각 백화점들의 예약판매가 동나는 등 관심이 높다.보졸레누보는 프랑스 부르고뉴주 보졸레 지방에서 매년 그 해 9월에 수확한 포도를 저장했다가 11월 셋째 주 목요일부터 출시하는 포도주. 일반 와인과 달리 숙성기간이 짧아 4개월 내에 마셔야 한다. 이 와인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맛과 향의 품격이 낮다는 이유로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햇(nouveau) 와인'이라는 이름에다가 쌉쌀하면서 달콤한 맛, 그리고 은은한 향과 우아한 보랏빛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이맘 때쯤이면 외신들마다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연구결과를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포도주가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항암효과를 지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지난 주에도 영국 임페리얼대 국립심장·폐연구소 연구팀은 적포도주가 치명적인 폐질환에 효과적이라는 '엄청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바야흐로 포도주 판매량을 늘리려는 포도주 생산국의 '언론 플레이'가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인은 미국인에 비해 지방 섭취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오히려 낮은데 포도주, 특히 탄닌이 풍부한 적포도주를 많이 마셔서 그렇다는 것. 이를 가리켜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한다.
그러나 적포도주가 건강에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약이든 넘치면 독이 되게 마련이다. 실제로 심장병에 좋다는 포도주도 많이 마시면 MBD(마치아파바-비그나미병)라는 병에 걸릴 수 있다. 1903년 이탈리아 해부학자인 마치아파바와 비그나미에 의해 발견된 MBD라는 질환은 예전에는 국내에서 발병하지도 않았지만 국내 포도주 소비량이 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한양대 구리병원 진단방사선과 박동우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MBD 환자가 5명이 나타났다"며 "이 질환은 만성 알코올중독증의 합병증으로, 증상도 판단장애, 행동장애 등 알코올중독증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보졸레누보도 좋지만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라는 공자의 말을 항상 기억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일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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