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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20세기 최고 詩人부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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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20세기 최고 詩人부부의 비극

입력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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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밀러의 연인이었던 아나이스 닌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둘 모두 뼈속 깊숙이에는 인간이 아닌, 작가가 살고 있었다."작가끼리 결혼하여 서로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주고 받은 예는 많다.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이 그랬고, 아이리스 머독과 존 베일리가 그랬다. 좀 더 최근의 인물로는 폴 오스터와 시리 허스트벳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아나이스 닌의 말처럼 '인간'이 아닌, 작가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삶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다. 조너선 프란젠과 역시 작가인 발레리 코넬이, 프란젠의 역작 '코렉션'이 출판되자 12년간의 결혼을 청산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세기 문학사에 남은 최고이자 최악의 결혼은 역시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의 결혼일 것이다. 지난 10월 출판된 다이앤 미들브룩의 '그녀의 남편'(Her Husband)은 이들의 결혼생활을 다룬 전기물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는 이제 미국 태생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으로 더 유명해진 것일까. 제목을 보고 언뜻 생각하면 플라스의 삶을 더 부각시키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남편의 외도로 서른 살에 자살한 플라스의 삶은 그 동안 이곳 페미니스트들의 단골 메뉴였고, 휴즈는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미들브룩은 이 두 시인 사이에서 사려깊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결혼한 남자, 그것도 천부적인 재능과 파괴적인 성격, 정신병력을 동시에 가진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으로서 휴즈의 삶을 조명한다. 결혼은 이 두 작가 모두에게 왕성한 창작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였지만, 결국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만다(비극은 비극을 부르는지 휴즈를 플라스로부터 떠나게 만든 연인도 결국 자살한다).

이 책은 남자에게, 그것도 뛰어난 시인이었던 남자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휴즈는 플라스가 죽은 뒤 유작을 모아 시집 '아리엘'을 출판했고, 방대한 분량의 일기 등을 편집, 출판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플라스를 주요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 역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84년에는 영국 시인 최고의 영광인 계관시인으로 선정된다. 98년,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출판한 시집 '생일 편지'에서 휴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플라스와의 관계를 털어놓는다. 이 책은 그 해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휴즈에게 시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상업적인 성공을 누리게 했다. 책이 나오고 몇 달 지나지 않은, 그것도 플라스의 생일 바로 다음 날인 10월 28일 휴즈는 생을 마감한다. 휴즈가 그의 시에서도 인정하듯, 그의 결혼은 실패였다. 그러나 죽음조차 그들을 갈라놓지 못하였으니, 그들의 관계는 결혼은 죽음보다 치명적인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박 상 미 재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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