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지음 열림원 발행·6,000원
이성복(51·사진) 시인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을 시집으로 보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외국 시인의 시를 읽고 300자 안팎의 문구를 적어놓았다.
그 문장은 물론 시적이지만 단상에 가깝다. 파블로 네루다가 '시가 날 찾아왔다'고 노래할 때 그는 '부르지 않아도 노래는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로르카가 '나 그것을 보고 싶지 않네!'라고 탄식할 때 시인은 '애인아, 이제 흐르면서 우리 화해하자'고 청한다. '시에 관한 시'를 쓰는 작업을 통해 그는 오래 불화했던 시(詩)라는 애인과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
기이하게도 이 짧은 시편들은 시인이 오래 침묵하기 이전의(그는 올6월 10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을 냈다) 절창을 떠올리게 한다. 쓸쓸하지만 '사랑은 반복'이란 말은 진실에 가깝다. 어떤 식욕이 너무 빨리 사라지고 다른 식욕이 찾아오는 것처럼, 사랑도 대개 그렇게 왔다('잔치국수 하나 해주세요'). 사랑은 자기반영과 자기복제여서, 그가 상대를 통해 사랑하는 건 그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었다('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
그럼에도, 사랑을 믿고 싶다. 왜 마음은 그러한가. '오래 젖은 당신의 손처럼, 나날이 내 얼굴 초췌해지는 것은 당신이 내 속에서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완전 방수의 고무장갑과 달리') '내 기쁨 그대 눈으로 흐르고, 내 사랑 그대 입으로 흘러 들어도, 그대 날 바라보며 공연히 한숨짓는 건 넘치는 사랑과 기쁨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어떻든 견디기 힘드는 것')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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