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애국주의가 역사·문화 영역에 침투해 한반도 및 동북아에 역사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보다 중국의 국가주의에 눈을 돌려야 할 때이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의 역사는 시간으로 2,000년에 불과하며 공간으로 대동강 아니 한강 이남에 국한된다."31일 오후 서울 신문로2가 나눔문화연구소.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가 개최한 공개토론회장에서 관련 학자와 시민 운동가들은 입을 모아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강한 우려를 밝혔다. '한·중 역사전쟁, 고구려(사)가 위험하다'를 제목으로 한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는 물론 외교통상부, 문화재청 등 관련 부처 실무자들과 국사편찬위원회, 정신문화연구원 관계자들까지 참석해 민관 연대의 필요성 등에 의견을 모았다.
운동본부 교과서 위원장 안병우 한신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전 한국고대사학회장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중학교 역사교과서 중의 하나로 이를 교과서로 삼은 학교가 거의 없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문제지만 중국의 역사왜곡은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부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진행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내년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중국의 지안(集安) 고구려 유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는 보류된다면 고구려사가 중국 역사라는 것이 공인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를 막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주사가 전공인 윤휘탁 동아대 연구교수는 중국이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중앙·지방 정부와 연구 단체가 총동원돼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실태를 자세히 소개했다. 윤 연구교수는 "중국은 1997년 하반기부터 사실상 동북지구 연구에 착수했으며 지난해 초 5개년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중국은 고구려 정권이 남하한 일부 부여족과 전한 고구려현 경내의 기타 민족이 공동으로 수립했다고 규정, 정권 주체를 한민족과 분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구려의 활동 중심도 도성이 몇 차례 옮겨져 후기에 현재의 중국 강역(疆域) 밖으로 옮겨졌지만 그 지역 역시 한사군의 관할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고구려의 활동 범위는 한사군을 벗어난 적이 없다며 심지어 현재 중국 조선족의 혈통은 고구려 멸망 이후 다수 민족의 혈통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중화민족의 각 민족이 이룬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현재적 편의의 사관이나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활동했던 모든 민족은 당연히 중국인이며 중국 민족이라는 민족관은 모두 현재의 영토를 기준으로 다른 모든 민족의 귀속권을 일방으로 강탈하는 영토 지상주의 역사관"이라며 "학문은 정치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중국 공산당의 논리 속에서 또 하나의 학문적 돌연변이가 탄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고구려사 전공자의 한 사람인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996년 이후 중국학계는 10여 차례, 최근 들어서는 해마다 고구려 관련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며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하고 고구려와 중원 왕조의 관계를 중국 내부의 민족 관계로 설정하기 위해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일방적 주장을 늘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대표로 발표에 나선 이수호 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는 "정부가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데도 그 동안 상황 인식이나 대응 방식이 순진하기 짝이 없다"며 "우선 학계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연구 결과를 서둘러 내놓고, 동아시아 시민연대를 통해 중국의 역사 인식을 교정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쪽에서 발표자로 참석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사무국의 조철수 교육연구사는 "일본 역사왜곡에 비해 중국의 역사왜곡은 상대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며 외교적인 대응은 지금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관련 역사 전문가 육성 독립된 상설 감시 기구 설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발표가 끝난 뒤 이어진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우선 내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북한 고구려 고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중장기로 관련 부처와 민관 연락 체계 마련, 예산 확보, 남북한 공조 등을 통해 중국의 역사왜곡에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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