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만 지음 바다출판사 발행·1만2,800원
7세기 막강한 당나라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며 동북아시아를 쥐고 흔든 고구려의 중심에는 연개소문이 있었다. 중국의 경극에서도 당태종 이세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군으로 묘사된 연개소문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임금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역적으로 기록한 반면, 신채호와 박은식은 위대한 혁명가, 또는 민족 자존심을 지킨 탁월한 전략가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일본서기' 등 국내외 각종 문헌과 기록을 토대로 역사적 상상력을 담아 연개소문을 추적했다. 저자는 642년(영류왕 25년) 연개소문이 왕을 살해하고 혁명을 일으키기 전날 밤 고뇌하는 인간적 모습부터 그리고 있다.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와 정면 대결을 피하자는 유화파와 강경파, 문신과 무신,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간의 대립이 극심한 상태였다. 마침내 왕과 몇몇 대신들은 대외 강경론을 주장하는 연개소문을 없애려고 했지만 먼저 첩보를 입수한 그가 거꾸로 왕을 베어버렸다. 연개소문의 정권 장악 후 고구려는 당나라와 일전불사의 태도를 보인다. 우리 역사상 가장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를 펼친 때였다. 영류왕 때는 당나라 사신이 왕에게 절도 하지 않았지만, 연개소문이 지켜보는 보장왕 앞에서는 기어가 엎드렸다는 기록도 있다.
저자는 당태종 이세민을 연개소문의 라이벌로 묘사한다. 이세민 역시 형제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병법에 능하고 중앙정부의 통치를 안정시킨 인물이었다. 연개소문은 645년 1차 고·당 전쟁과 661·662년의 2차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당군에 대항하는 고구려인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최고권력자 연개소문이 죽은 후 권력공백이 생기면서 아들 남생과 남건의 내분으로 고구려는 급격히 몰락한다. 그는 이러한 사태를 예상했던 듯 두 아들에게 "고기와 물 같이 화합해 작위를 다투는 일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지만 헛일이었다. 저자는 그의 사망 시기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665년이 아니라 663년이고, 그 원인은 갑작스러운 병이라고 추정했다.
역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구성된 이 책은 '연개소문은 왜 혁명을 일으켰을까', '그는 왜 신라를 적으로 돌렸을까' 등의 의문문으로 제목을 달고, 독자적 시각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평가하고 있다. 연개소문과 김춘추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 고구려가 백제와 손잡게 된 내막 등을 밝히는가 하면 중국 사학자들이 연개소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양만춘을 과대포장했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자료 고증이나 그 동안 연구결과에 대한 치밀한 검토보다는 한 개인의 영웅 만들기로 흘렀다는 느낌이 있지만, 베일에 싸인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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