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개발연대의 경험이 아무리 쓰다 해도, '만약 그 시절이 없었다면'이라는 가정법 앞에 적어도 경제성장의 측면에서는 마땅한 해답을 찾기 힘들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정치자금을 둘러싼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와 비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쳐나가는 수많은 인재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지나간 개발연대가 떠오르는 것은 한국 경제가 더 이상 표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사실상 우리 경제는 20여년을 뚜렷한 모델 없이 표류해왔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및 중화학공업정책의 종료와 더불어 한국적 발전 모델은 물리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80년대 중반까지 과거와 비슷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적 관성이요, 무대로 치면 커튼 콜이었을 뿐이다.
개발연대의 발전모델에 뚜렷한 한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70년대 중화학공업정책을 통해 누적된 은행권의 부실여신은 만약 80년대 3저 호황이 없었더라면 우리 경제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었고, 개발연대 성장엔진의 한 축이었던 재벌은 그 후 경제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 앞에 당당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70년대식 발전모델의 필수 불가결한 구성 요소인 정치적 권위주의를 국민은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70년대 발전모델의 물리적·정책적 종언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지나간 발전모델의 종언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왔느냐이다. 상식적인 것이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최소 요건은 예측가능성이요, 불확실성은 경제의 최대의 적이다. 그러니 나쁜 룰이라 할지라도 룰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따라서 과거 발전모델의 종언이 우리에게 보약인지 독약인지는 그 이후 우리가 새로 만든 게임 룰이 과거의 룰보다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달린 셈이다. 불행히도 개발연대라는 배에서 내린 한국 경제는 아직도 갈아 탈 배를 찾지 못하고 뗏목 위에 표류하고 있는 보트 피플이다. 그리고 배에서 내릴 때 가지고 내린 식량과 물은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2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라고 아직도 갈아탈 배를 찾지 못했나. 사회를 정화했고,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었으며, 신한국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제2의 건국도 해보았고, 마침내는 국민이 참여해서 대통령직의 계속 수행 여부까지를 결정하는 확실한 참여정부를 만들어냈다. 선장의 폭압에 못 이겨 배에서 내렸으니 뗏목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둘러싼 논의가 무성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갈아탈 안전한 배, 즉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는다는 전제 하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에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소득 2만 달러 시대와 동북아 허브 이야기가 간혹 들리지만, 2만 달러 시대는 전략이 아니라 목표이고, 허브란 기본적으로 남이 우리를 선택해주어야 가능한 것이지 우리가 전략으로 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나간 대선자금을 둘러싼 이전투구가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고, 돈 주고 죄인이 된 재벌그룹 회장들은 전경련에 모여서 돈 받는 방법을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돈 못 주겠다고 결의했다고 한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에 대한 청사진을 반드시 함께 제시해주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재벌은 사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게임 룰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한때 새로운 희망이었던 것처럼 보였던 벤처기업은 매달 수백 개씩 도산하고 있다. 외국 기업은 한국을 떠나겠다는 소식들뿐이다. 비생산적인 정치논쟁을 빨리 끝내고 새로운 성장모델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20년간 방황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장 덕 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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