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요시미 지음·서광덕 옮김 문학과지성사 발행 9,500원
6월 중국에서는 13만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중국의 20세기 10대 문화우상'을 뽑았다. 그 결과 '현대 중국 국민문화의 어머니' 루쉰(魯迅, 1881∼1936)이 5만명의 지지로 1위를 차지했다. 살아 생전 허무주의자, 봉건 유물, 타락 문인, 변절자로 불렸던 루쉰은 오늘날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로 숭앙받는다. '광인일기(狂人日記)', '아큐정전(阿Q正傳)' 같은 그의 작품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국에서 으뜸가는 텍스트로 읽히고 있다. 일찍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자인 마오쩌둥도 루쉰을 일러 '신중국 제일의 성인', '민족의 영웅'이라 불렀다.
청조 말에 태어나 근대화의 거대한 흐름과 혁명, 반혁명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소설가, 문학 이론가, 문화 운동가, 계몽 사상가로서 온몸을 불사른 루쉰. 그의 삶이 일구어낸 성과에 비추어 평전과 논문, 연구서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루쉰 읽기'에 도전한 숱한 책들은 한결 같이 거인을 감싸고 있는 후광에 눈멀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대부분의 책이 루쉰을 위대한 지식인, 사상가, 민족주의자로만 읽는다. 그러나 그런 외눈으로 루쉰을 바라보기에는 그의 삶과 작품에 내재한 혼돈과 모순이 너무 크다. 루쉰이 작품과 생애를 통해 보여준 수많은 모습을 하나로 관통하는 원리를 찾아내려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빛난다. 루쉰 연구 1세대인 일본인 중문학자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1910∼1977)는 루쉰을 영웅으로 정의하는 대신 '인간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박한 생활 신조를 가졌던 문학가, 생활자라로 본다. 그리고 루쉰 작품 속에 숨어 있는 '한 점의 암흑'을 찾아낸다.
전근대라는 어둠에 사로 잡혀있던 중국의 현실에 그 누구보다 먼저 절망하고 자신의 '절망에 절망했던' 루쉰의 모습을 직시한다. 다케우치의 이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허무와 고독의 심연을 내면에 숨긴 문학가 루쉰과 봉건 질서와 식민지 현실에 맞서 온몸을 던진 계몽가 루쉰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다케우치는 이런 루쉰 연구를 바탕으로 전후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명제에 기반한 일본 근대화의 근본적 한계를 비판했다. 봉건 질서를 그 누구보다 미워하고 거부했으면서도 서구에서 수입된 근대의 가치들, 이른바 '진보'라고 불린 것들에 대해서도 맹목적인 찬사를 보내지 않았던 루쉰에게서 '지혜의 눈'을 빌렸던 것이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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