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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번역서 "함량미달" 많다

입력
2003.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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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신간 '다리를 놓으며―황후의 독서 추억'(작가정신 발행)은 미치코(美智子) 일본 황후가 1998년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세계대회에 보낸 강연 원고다. 이 책에서 황후는 독서를 '다리 놓기'에 비유했다. "독서는 제게 뿌리를 부여하고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 뿌리와 날개는 제가 안팎으로 다리를 놓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넓혀나가고 가꾸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고.번역도 다리 놓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번역자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어주는 일꾼이다. 그 다리는 정확하고 아름답고 튼튼해야 한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이 넉넉해서 단어 하나하나의 특별한 뉘앙스까지 전할 수 있어야 하고, 문화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끔 역주를 달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에 못 미치는 번역서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어린이 그림책 신간 '세상에서 처음 일주일이 생겨난 이야기'(영교출판)에 소개된 중국 옛 이야기 속 달의 여신은 '창오'다. '창오'가 뭐지? 알고 보니 월궁 선녀 '항아'를 부르는 다른 이름 '상아'를 중국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우리는 항아는 알지만 창오는 모른다. 항아를 창오로 표기한 무신경이 거슬린다. 번역자는 창오가 뭔지 확인해보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신간 '성의학사전'(이채 발행)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씌어진 수백 종류의 성 관련서를 자료로 동원하고 있는데, 그 중 고대 중국의 섹스 테크닉에 관한 책 제목을 '사랑과 섹스의 도'로 표기하고 있다. 이건 또 뭔가. 어리둥절해서 알아보니 '소녀경'의 영어식 표현이다. 두 명의 미국인 저자가 쓴 표기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사소한 것을 갖고 트집 잡는다고 생각하시는지. 하기는 이 두 가지 사례는 운 나쁘게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무신경 내지 불친절, 혹은 무지는 다리 건너 딴 세상에 닿고 싶어하는 독자의 행로에 걸림돌이 된다. '창오'에서 '항아'로, '사랑과 섹스의 도'에서 '소녀경'으로 나아가는 길은 너무 멀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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