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지난 6월말 어느날 오후, 전남에서 경남으로 막 접어든 남해고속도로 상공을 경남도의 소방헬기 한대가 저공 비행했다. 날씨로 봐서는 산불이 났을리도 만무한데 느닷없이 소방헬기가 나타난 탓에 운전자들은 의아해 했다. 이 헬기가 착륙한 곳은 대덕밸리의 바이오 벤처기업 크레아젠 배용수 사장 일행이 타고 있는 승용차 근처의 공터. 본사 및 공장의 경남 이전을 논의하기 위해 경남도청으로 향하던 배 사장이 고속도로의 심한 정체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경남도가 그를 '공수'하기 위해 소방헬기를 보낸 것이다. 경남도 투자유치과 오춘식 과장은 "김혁규 도지사가 배 사장이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 같다는 보고를 받고는 당장 운행 가능한 헬기를 보내라고 엄명을 내렸다"고 말했다.우수 중소·벤처기업의 유치를 놓고 벌이는 지방자치단체 간의 '전쟁'이 뜨겁다. 충청 이남의 지자체들은 서울과 멀다는 지리적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눈이 번쩍 뜨이는 '당근'을 내걸고 수도권과 대덕밸리의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반면 대덕밸리와 같은 벤처단지들은 하나둘 떠나는 알짜 벤처들의 빈자리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투자하겠다구요, 맨손으로 오세요"
경남도는 김 지사가 명명한 '특별기획상품'을 앞세워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100명 이상 고용, 50억원 이상 투자' 조건을 충족한 기업에게는 공장부지의 50%를 도에서 사들여 땅값의 1%에 불과한 임대료만 내게 하는 특전을 준다.
투자를 결정한 기업은 초고속 인허가 과정을 지켜보며 한차례 더 놀란다. 경남도 공무원들이 직접 나서 유치한 일본의 바이오벤처 제이에스텍이 공장 건축허가를 받고 첫 삽을 뜰 때까지 걸린 시간은 19일. 보통 공장 건축허가를 받는데 6∼7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경남도의 투자유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전남도의 기업 유치 작전도 경남도에 뒤지지 않는다. 전남에 투자하겠다고 나선 기업의 대표는 '팔자에 없는' 헬기 투어까지 맛보게 된다. 전남도 투자진흥과 김종갑 차장은 "전남의 사회간접자본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헬기 투어 코스를 마련했다"고 자랑했다. 전남도는 또 기업이전 컨설팅 비용의 50%, 이전보조금, 시설 이전비, 고용 보조금 등 각종 인센티브를 내놓고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김 차장은 "기업을 모셔오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자원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송바이오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바이오벤처의 메카를 노리고 있는 충북도는 서울의 '코 앞'이라는 지리적 매력을 앞세워 굵직한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하고 있다.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보건원, 보건산업진흥원, 생명공학연구원의 이전이 확정됐고, 대덕밸리의 알토란 같은 연구소인 한국생명과학연구원 분원도 충북으로 옮길 예정이다.
대덕밸리 엑소더스
지자체들의 열띤 기업 유치 경쟁으로 대덕밸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덕밸리를 대표하는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회사를 옮기기 위한 물밑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대덕밸리를 떠나기로 작정한 대형 바이오 벤처기업은 대략 5개사. 이중 2개사는 해당 업종에서 국내 1위를 달리고 있는 '거물급'이다. 만약 이 업체들이 이곳을 떠나면 대덕밸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급 업체 가운데에는 신약개발 전문기업 C사와 펩타이드 및 약물전달기술 전문기업 D사, 환경 바이오 전문기업 E사 등이 타 지역으로의 이전을 검토하고 있거나, 이미 이전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 관계자는 "다른 지방으로 회사를 옮기면 당장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다, 사업여건도 괜찮다면 대덕밸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며 "지자체의 기업 유치 경쟁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토대인 동시에 대덕밸리의 위기"라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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