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여름날을 접고 때가 되면 스스로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은 '불멸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 노래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낙엽에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지난 어느날의 사랑, 또는 그 푸르렀던 젊은 날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이브 몽탕과 차중락의 불멸 노래
'낙엽을 긁어 모아도 북풍의 싸늘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몰아가 버리네/ 추억과 회한도 저 낙엽과 같은 것…' 이 즈음이면 애감어린 저음으로 가슴을 울리는 '고엽(The autumn leaves)'이 거리를 메운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조셉 코스마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1946년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탕이 직접 불러 유명해졌다. 1991년 11월에 그가 사망했을 때 조객들은 고인의 무덤 위에 낙엽을 한 웅큼씩 집어 올려 놓음으로써 애도를 표했다.
팝 음악으로는 영국출신 포크록 그룹 스트롭스(Strawbs)의 'Autumn'과 에드가 윈터그룹(Edgar Winter Group)의 'Autumn'이 가을이 시작되고 낙엽이 떨어질 때 까지 꾸준히 들을 수 있는 명곡들이다. 낙엽의 서정성을 듬뿍 담은 음악은 역시 이탈리아의 칸초네. 소박한 정원이라는 뜻을 가진 IL Giardino dei Semplici의 'M'innamorai(사랑에 빠졌어요)', 카테리나 카셀리의 'Momenti
si monentino', I Pooh의 'Opera Prima', 치코의 'La Notte' 등을 들으면 정서가 메마른 사람도 왠지 모를 감상에 젖어 든다.
국내팬들의 영원한 사랑을 받는 낙엽 노래는 66년 차중락이 발표한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 이 노래는 신세기 레코드 사장 아들인 강찬호가 쓴 동명의 자작시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Anything That's Part Of You'에 붙인 번안곡이다.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라는 이 노래에 이화여대생과의 실연 아픔을 담았던 차중락은 28세인 1968년 10월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난다.
낙엽과 연관한 감성은 70, 80년대 노래에서 더욱 뚜렷이 표출된다. 김추자의 '나뭇잎이 떨어져서', 장현의 '마른잎', 신계행의 '가을사랑',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등이 생명력을 가진 애창곡. 특히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설움이 더해요'라고 울부짖듯 부르는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와 저항가수 김민기의 '가을 편지'는 지금도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심금을 울린다. 최근에 전파를 자주 타는 노래로는 김동률이 부른 '낙엽' 등이 꼽힌다.
센트럴파크의 낙엽
"난 열두살 때부터 꾸던 꿈이 있죠." "뭔데." "어떤 남자예요." "어떻게 생겼어?" "몰라요, 얼굴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가 내 옷을 찢어요." "그리고는?" "끝이에요."
이 대화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온통 낙엽으로 뒤덮인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주인공 멕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탈이 나누는 내용이다. 하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낙엽 아래 서있는 두 주인공과 그 배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이들의 대화는 잊은 지 오래다.
시한부 삶을 사는 22세의 처녀(위노나 라이더)와 조만간 손주를 보게 되는 초로의 남성(리처드 기어)과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로맨스를 그린 '뉴욕의 가을'도 영화 전편을 수놓는 낙엽이 일품이다.
무협영화 '영웅'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만들어내는 화폭풍(花暴風)속에서 벌이는 장만옥과 장쯔이의 결투신은 몇 번을 봐도 눈이 지치지 않는 명장면이다. 브래드 피트의'가을의 전설', 주윤발의'가을날의 동화' 등도 볼만한 영화로 손꼽힌다.
한국영화로는 '동승', '연애편지' '미술관옆 동물원','만추' 등이 추천작.
/한창만기자 cmhan@hk.co.kr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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