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성석제씨는 한 에세이집에서 뛰어난 글에 감탄해 '몽땅 베끼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을, "그래 봐야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을 꺼야"라고 다짐하며 억눌렀다고 고백했다. 좋은 작품에 경탄하는 마음은 그 작품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을 넘어 '베끼는 것'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그 경계는 저작권 소송의 영원한 쟁점이 되고 있다.그러나 작품이 내포한 모든 요소가 저작권 보호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문학·학술이나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것'(저작권법 2조 1호)이라는 저작권 보호대상의 속성을 '아이디어'와 '표현'으로 분리해 철저히 '표현'에 대해서만 보호하는 입장이다. 이에 관한 국내 판례는 학술 저작물과 관련된 '희랍어 문법'(93다3073)에 대한 것이 있다. '희랍어 문법'이라는 책의 저자가 자신의 저술을 도용했다고 제기한 저작권 침해소송에서 대법원은 "아이디어나 이론 같은 사상이나 감정 그 자체에 설사 독창성이 있다 해도 소설의 스토리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저작물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철학서적에 나오는 독특한 문장들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지만, 그 철학적 아이디어와 이론에 공감해 그 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책을 냈다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는 예술 분야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의류 분야에서 '디자인'은 보호대상이지만 그 상위개념인 '스타일'(밀리터리룩 등 의류의 특정 경향)은 저작권 대상에서 제외돼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를 새롭게 적용했다. 대법원은 한복 문양 사건(91다1642)에서 "한복 디자인이란 종래의 문화적 유산에 기초를 두고 이에 변형을 가한 것이므로 저작자의 독창성이 나타난 개인적인 부분 외에 제작기법이나 표현형식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고 판결, '한복의 스타일'을 만인의 것으로 인정했다. 생활 한복에 대해서도 "응용미술 작품이 대량생산으로 실용적·상업적 목적으로 창작된 경우, 전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독립적인 창작물만 보호된다"(대법원 2000도79)며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오랫동안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았던 외국 저작물도 1987년 세계저작권조약(UCC)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국내 저작물과 똑같이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 2000년 뮤지컬 '캣츠'의 해외 저작권 소유자가 캣츠를 무단 번안 공연한 것을 금지해 달라며 국내극단을 상대로 낸 '공연금지 가처분 사건' 승소 결정은 해외 저작물을 보호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국내 상황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은 WTO 가입으로 해외의 고전 저작물도 모두 소급해 보호대상에 포함된 뒤 국내에서 발생한 첫 해외저작권 분쟁이었다.
이 같은 기준을 통해 작품이 저작권 보호대상에 해당한다고 결론 나면 다음은 과연 '베낀 것인지'(저작권 침해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법원은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에 '의거'(依據)하여 작품을 완성했다는 '의거관계', 두 작품이 흡사하다는 '실질적 유사성' 두 가지를 보게 된다. '하얀나라 까만나라' 사건(대법원 95다49639)과 '아스팔트 사나이' 사건(서울지법 95가합72771)에서 법원은 서적을 원용한 방송대본과 특정 만화에 대해 "일부 사건, 대화, 사실적 표현 등에 공정한 인용을 넘어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며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반면 '까레이스키' 사건(대법원 99다10813)은 "피고의 대본은 원고 소설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구상했던 것"이라는 등 의거관계가 성립하지 않은 정황이 인정돼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사건(대법원 97다34839)에서는 "실제 노벨상 수상자가 아닌 특정 해외 과학자를 똑같이 수상자로 묘사하는 등 피고가 원고의 '핵물리학자 이휘소'라는 책에 의거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표현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고 내용을 충분히 소화해 새롭게 표현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사실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저작권 침해를 부정했다.
그러나 음악에서 '같은 음이 반복 되는 시간'이나 소설에서 '같은 대화가 오간 횟수'등 '실질적 유사성'을 법규정을 통해 기계적으로 계량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베끼기'에 대한 판단은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느낌'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저작권과 다른 개념으로 저작인접권이 있다. 녹음·녹화 기술의 발달로 가수 등이 직접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표현의 기회가 줄어들자 '실연자'(實演者)를 보호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저작인접권이다. 저작권이 저작물을 만든 저작자에게 주어진 권리인데 비해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을 표현하는 실연자에게 주어진다. 예를 들어 작사, 작곡가는 저작권을, 가수는 저작인접권을 갖게 된다. 또 음반제작자와 방송사업자도 자금을 투입한 만큼 저작물에 대해 권리를 지니게 되는데 음반제작자의 음반 복제·배포 권리, 방송사업자의 중계 방송 권리도 저작인접권에 해당한다.
반면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은 저작권 자체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저작권자에게 주어진다. 저작재산권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저작물에 대한 이익을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로 복제권, 배포권, 원작을 변형시킨 2차 저작물에 대한 작성권 등이 대표적이다. 즉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복제하거나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 받지 않도록 보호 받는 권리를 말한다. 단 학교 교육이나 보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연·방송 등의 경우 저작자의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저작인격권은 '저작자'가 '인격적' 이익을 보호 받을 수 있는 권리로 '저작자' 자체와 구분이 불가능하다. 저작자의 이름을 표시할 권리인 성명 표시권, 저작물의 내용과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인 동일성 유지권 등이 이에 포함된다. 저작재산권은 양도가 가능하지만 저작인격권은 권리의 성질상 저작자에게 전속(專屬)돼 양도나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저작자가 작품 사용을 승락했더라도 원저작자를 표시하지 않거나 작품을 변형시켰다면 저작인격권 침해로 볼 수 있다. 또 저작자가 사망한 후에도 이용자는 저작자가 살아 있었다면 저작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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