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30일 SK 비자금의 당 유입과 관련, "감옥에 가더라도 제가 가야 마땅하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는 "유입 사실을 알았느냐"는 거듭된 질문에는 "무엇을 언제 알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에둘렀다.이 전 총재는 지난 주말부터 대국민 사과 시점을 고민해왔다고 측근들은 말했다. 결국 검찰수사가 마무리되기 전이라도 "빨리 털어버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일각에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지난 대선자금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 고려됐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패자인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 사용에 대해 먼저 사과한 만큼, '이젠 노무현 대통령 차례'라는 쪽으로 여론이 돌아서길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회견 후에도 '이 전 총재가 어디까지 알았나'는 의혹은 그대로다. 이에 대해 이 전 총재 측근들은 "정말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시 상황에서 포탄이 몇 발 들어왔다는 보고를 일일히 받았겠냐"는 주장도 했다. 한 측근은 "어젯밤에도 재확인했지만 이 전 총재는 '정말 몰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100억원의 거금이 들어왔는데 '보고'조차 안 했다는 비(非)상식은 그런 보호막으로 쉽게 덮여지지 않는다.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재가 세세한 항목은 몰랐을지라도 대략적 윤곽은 파악하지 않았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그 근거로 최 의원이 기업을 상대로 모금전화를 돌린 뒤 이 전 총재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거론한다.
유입 당시는 몰라도 최소한 유입 후에는 이 전 총재에게 보고됐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SK측이 비자금 전달창구로 이 전 총재의 동기 동창인 최 의원을 특별히 지목했고, 측근 김 전 총장이 비자금 유입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정황 근거로 든다.
이 전 총재는 당초 31일 선친 1주기 추도식 이후 미국으로 재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변경, 한동안 국내에 체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이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
"말 그대로 모든 책임으로, 법적인 책임도 당연히 포함된다."
― 검찰소환에 응할 생각인가.
"요구해오면 피하지 않고 응하겠다."
― 정계복귀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정계복귀를 운운할 여지는 더 이상 저와 관련해 나올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 최돈웅 의원 사건에 대해 언제 알았나.
"대선후보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무엇을 언제 알았느냐와 언제 누가 어떻게 했는지 알았느냐 하는 것은 내가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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