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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슈 선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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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슈 선점 전략

입력
2003.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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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선거운동의 귀재라는 정치전략가 딕 모리스가 갈파한 파워 게임의 승리전략 6가지 중 첫째가 '상대의 이슈를 내 방식으로 선점·해결한다'이다. 클린턴의 정치 컨설턴트로 유명한 그는 역대 미 대선 등의 승리전략을 다룬 저서 '파워 게임의 법칙'에서 말한다. "경쟁 상대의 이슈들을 해결해버린다면 상대의 존재이유가 사라지고 따라서 상대가 성공할 기회도 줄어든다." 한 예로 2000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민주당의 전통적 이슈인 교육 의료 복지를 놓고 고어보다 선수를 치자 당황한 고어는 차별성을 부각시키려고 허둥대다 유권자에게 따분함과 역거움을 남겼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모리스의 전략을 알고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파워 게임의 승리 법칙이라는 것이 어디나 똑같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요즘 한국 정치에서 이 법칙이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대통령 재신임'은 원래 야당에서 피어 올랐다. "임기를 채우겠느냐", "재신임을 물어야 할 것" 등의 얘기가 야당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이슈를 선점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이 이슈화한 후 야당은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이제 야당이 '재신임'을 이슈로 할 수는 없게 됐다. 나중에 탄핵을 꺼내들려고 해도 재신임과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궁색하게 됐다.

■ 대선자금 공개니, 고백이니 하는 얘기는 여권에서 먼저 나왔다. 민주당이 갈라서기 전 공개라는 것을 했고, 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고해성사를 얘기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 문제의 이슈는 한나라당이 선점한 '특검'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물타기라는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지만 밀리면서 특검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더 이상 밑질 것도 없다. 이제 여권은 늘 따라가며 장황히 입장을 설명해야 한다. 이런 판에 대선자금 문제의 한 쪽 최종 당사자인 이회창씨가 어제 '전적인 책임론'이란 이슈를 선점했다. 그러니 다른 한 쪽의 노 대통령 처지가 묘하게 됐다.

■ 모리스는 "정치는 재미있는 파워 게임"이라 했는데 우리도 정치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정서도 다르지만 미국 처럼 대선때 정책을 놓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임기 내내 "네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 식으로 전쟁을 치르니 말이다. 다만 이번엔 터져야 할 것이 터진 대선자금 문제인 만큼 확실한 결말이 지어져서 결과적으로라도 재미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골병드는 경제와 민생에 대한 보상이다.

/최규식 논설위원 kscho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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