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특정 부위에 털 좀 없는 게 뭐 대수냐고. 그런데 여자들은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슬쩍 건드리는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혀. 아버지, 삼촌의 모습만 떠올리면 내 넓어지는 이마가 심상치 않아. 누군가 머리 몇 개만 뽑아도 가슴이 미어지지. 수영모자를 벗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한다고. 너도 한번 없어보라니까…!”시이저를 위한 클레오파트라의 비법이 있었을 만큼 탈모는 수천년간 남성을 괴롭혀왔다. 비방을 자처하는 수많은 치료법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동안 ‘환자 아닌 환자’들은 좌절과 콤플렉스에 시달려왔다. 이들을 위한 묘방은 정말 없는 것일까.
탈모로 고민하는 40세 헤어디자이너, 30세, 28세 회사원과 유정환 마이클리닉피부과 원장, 이미지 컨설턴트인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이 만나 탈모 환자들의 속 이야기와 치료법에 대해 진솔한 ‘탈모 토크’를 벌였다.
머리카락 많으면 특혜
강진주 소장 “세 분 다 전혀 제 생각과는 다르군요. 별로 티가 안 나는데요.
“모르시는 말씀. 이마 보세요. 다 벗겨질까봐 얼마나 걱정인데요.”
“전 척 보니 알겠네요. 앞머리가 짧아지고 가늘어지죠? 전형적인 초기증상이군요.”
강 소장 “남자들은 나이 들어보이는 이미지가 플러스일 때도 있는데, 꼭 그렇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본인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왜 여태 결혼 못 했겠어요. 소개 받아 나가면 여자 얼굴이 달라져요. 가발 쓰고 나가도 척 알아봐요. 세상의 모든 여자는 ‘대머리 남자친구’를 용서 안 하잖아요. 미팅 자리에선 바로 ‘폭탄’이죠.”
“저도 소개팅 했는데 모자 쓰고 나간 첫날은 분위기 좋았거든요. 애프터에서 모자를 벗고 나갔더니 그 다음부터 연락이 안 되더라구요.”
“저보다 더 머리 빠진 후배가 있는데 저한테 형이라고 부르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거든요. 그 후배, 모임에 아예 안 나오려고 해요.”
유정환 원장 “젊은 층의 탈모가 더 문제입니다. 저 자신도 지금은 치료를 받아 나아졌지만 전공의때 심한 탈모 환자였거든요. 그때 교수님이랑 함께 회진을 돌면 환자들이 저보고 ‘선생님’ 하는 겁니다. 교수님이나 저나 얼마나 민망했던지…. 불이익도 많이 겪어요. 면접시험에서 나이 들어보이는 지원자는 능력이 평가절하되거든요. 윗사람 입장에선 나이들어 보이는 부하직원을 배제하고 싶어합니다. 탈모 환자들이 사회생활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 거죠.”
“저도 직업적으로 늙어보이면 타격을 받습니다. 확실히 찾는 손님이 줄죠.”
강 소장 “그런 직업군이 있기는 합니다. 의사도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는 젊어 보여야 하구요, 내과 외과 의사라면 진중해 보이는 편이 신뢰를 얻죠. 유 원장님도 염색하시는 것이…?”
"머리 난다" 광고 안믿어
“그래서 탈모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보셨습니까?”
“저 같은 경우 가족들 모두 ‘전멸’이거든요. 삼촌들 모이면 서른 서넛 나이에 벌써 훤했죠. 그래서 고등학교때부터 바르는 약, 외국에서 산 전기 빗, 태반으로 만든 프랑스 약, 중국산 101, 솔잎으로 두드리기 등등 별거 다 해봤어요. 결과적으로 ‘머리가 난다’는 광고는 믿지도 않아요. 이제는 식물성 천연 샴푸를 쓰고, 먹는 약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는 비누에 무척 신경쓰는데 효과가 좀 있다던데요?”
“저도 샴푸하고 바르는 약을 전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2~3번씩 바르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안 하게 돼요.”
“검정콩이나 다시마는 효과가 없나요? 콩과 두유만 먹는 사람도 있던데….”
“다시마에 든 요오드가 좋다고는 하는데 정말 머리 난 사람은 별로 못 봤거든요.”
유 원장 “서양에서도 18, 19세기부터 유행했던 별별 비법이 많아요. 하지만 조금이나마 효과가 있는 것은 최근 몇 년 새 나온 몇가지 뿐입니다. 그런데 효과있는 의학적 치료법은 안 알려지고, 비의료적 접근은 광고가 쏟아져 어떤 치료법도 못 믿겠다는 오류에 빠지곤 합니다.
두피 관리실에서 700만~800만원씩 돈 들인 사람도 봤는데 지루성 피부염을 없애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피부과에서 더 값싸게 치료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문의로부터 탈모 원인을 정확히 진단받고, 맞는 샴푸와 약을 처방받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난 약은 먹는 프로페시아와 바르는 미녹시딜 정도입니다.”
“약을 꼭 먹어야 하나요? 먹어도 어차피 빠지는 것 아닙니까? 다른 관리법으로 탈모를 막을 수는 없을까요?”
유 원장 “사실 프로페시아가 효과는 있지만 거부감도 크죠. 먼저 성기능장애라는 부작용이 큰 문제입니다. 남성 스트레스의 첫번째가 대머리, 두번째가 성기능장애인데 어차피 빠진 머리에 성적 문제까지 떠안으면 정체성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40대 초반까지는 부작용이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발기부전 치료제를 병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 약을 끊으면 다시 머리가 빠지니까 계속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 즉 자신이 만성질환자가 됐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다 만성질환 한 두가지는 있는 것이고, 모든 만성질환은 완치가 아닌 관리가 목표인 것입니다. 청결을 유지하거나 스트레스를 피하는 등 관리법으로 탈모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한계에 봉착하면 약물치료가 필요합니다.”
약물치료가 최선
“오래 먹어도 괜찮나요?”
“5년까지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이 확인됐고, 같은 성분의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인 프로스카가 이보다 5~10년 먼저 쓰였는데 큰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임신한 여성이 먹거나 만져 분말이라도 흡수되면 남자 태아의 성기 기형을 낳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정 걱정 되면 약을 끊고 1~2주 뒤에 부부관계를 맺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바르는 약은 효과가 있습니까?”
유 원장 “프로페시아가 주로 정수리 탈모에 효과적이라면 미녹시딜은 앞머리에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머리를 감은 뒤 말린 상태에서 하루 두번씩 골고루 발라야 하니까 귀찮아 포기할 우려가 있습니다.”
“고주파 치료로 100% 머리가 난다고 말하는 피부과가 있던데요.”
유 원장 “캐나다산 기계인데 FDA 공인을 받지못해 효과를 확신할 수는 없어요.”
"모발이식은 고려할만한가요?"
유 원장 “탈모현상이 없는 뒷머리와 옆머리를 옮겨심는다는 개념인데, 심한 탈모에선 역시 정상적인 모발밀도를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이식하지 않은 부위는 계속 진행되니까 역시 먹는 약을 같이 복용하기도 합니다.”
강 소장 “제가 컨설팅을 해준 고객의 경우 훨씬 많이 벗겨진 분들이 많은데 오히려 연륜있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합니다. 다양성의 시대 아닙니까. 머리가 없어도 난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신감도 필요할 것같군요.”
유 원장 “스스로 문제라고 생각 않는다면 치료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조기에 손을 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끝으로 탈모 환자가 외치는 부탁 한마디. “제발 놀리지 좀 마세요. 정말 가슴에 맺힙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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