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가는 가을 도심 성곽을 따라 역사탐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올라가다 보면 서울의 산들이 한눈에 펼쳐져 절정에 달한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성벽을 끼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느껴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총 18㎞ 둘레의 서울 성곽(사적10호) 중 현재 복원된 곳은 10.5㎞. 이 중 산책을 즐기기에 알맞은 코스는 동대문―낙산공원과 성북동―북악산 구간. 1∼2시간 거리이고 산책로가 잘 가꿔져 있어 한나절 나들이에 제격이다.● 동대문-낙산공원 코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리면 이대동대문병원 바로 옆으로 낙산공원 오르는 길이 있다. 왕산로에서 이어진 성벽에는 넝쿨진 담쟁이가 가을빛을 뽐내고 있다. 걷기 쉽게 포장된 길을 따라 다양한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있고,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정자, 가로등도 운치있다.
가파르지 않은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창신동, 숭인동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성벽 중간 반대편으로 이어진 통로를 넘어가면 종로구 충신동이 나타난다. 성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과 좁은 골목길에서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골목을 쉬엄쉬엄 20∼30분쯤 걸어 오르면 낙산의 정상에 다다른다. 옛 시민아파트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낙산공원 제1전망대에 서면 발아래 서울의 전경이 나타난다. 이웃들과 소풍 나왔다는 김혜자(45·종로구 가회동)씨는 "오른쪽으로는 북악·인왕산이, 왼쪽으로는 남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가슴까지 시원해진다"고 말했다. 꼭대기서 맞는 상쾌한 가을 바람은 성곽여행의 보너스.
성벽길은 아쉽게도 낙산공원 제3전망대서 멈춰진다. 가톨릭대 혜화교정 담으로 성벽 길이 막혔기 때문. 낙산 성곽여행코스 주변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다.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썼던 비우당이 공원 안에 있고 대학로 쪽으로 내려가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던 이화장도 들러 볼 만하다. 올라왔던 길로 내려간다면 동대문에서 신설동쪽으로 1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관운장의 사당인 동묘를 구경해 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 성북동-북악산 코스
북악산 성곽여행은 성북동 성북초등학교앞 삼거리 서울과학고 옆에서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2㎞ 정도가 벤치 등을 갖춘 산책길로 잘 꾸며져 있다. 몇 걸음 올라 성벽 너머로 고개를 들면 북악의 단풍이 바로 코 앞에서 펼쳐지는데 성북동 저택들을 감싸 안은 품이 넉넉하다.
성벽길 중간에는 반대편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다. 성벽 너머는 딴세상.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골 같은 풍경이다. 높다란 성벽을 따라 배추밭, 무밭이 허름한 집들과 함께 늘어서 있다.
다시 산책길을 오르다 보면 얼마안가 길이 끊기는데 군 부대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진짜 재미있는 성곽여행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성벽을 따라 30여 분 코스의 한적한 산책로가 나타난다. 까치, 참새 등이 지저귀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성벽에 기대 솔잎 터널을 이룬다.
하산길 약수터를 지나면 팔정사 앞에서 성북동 주택가를 만난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성북동길의 시내버스 85번 종점에 이른다.
성북동에는 돈까스, 칼국수, 돼지갈비 등 유명한 맛집들이 즐비해 성곽여행으로 출출해진 속을 채우는데 그만이다. 또 주변에 한용운 생가인 심우장, 이재준가와 이태준가 등 근대 전통가옥, 간송미술관, 선잠단, 길상사 등 볼만한 곳이 많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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